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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in by 꾸자네
국보급 투수? 국보급 투수를 승인하는 투수, 낄낄

  야구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지만 학교다닐 때는 야구라면 모든 애들이 다 설치고 나서니까 오히려 신경이 안갔고, 줄맞춰서 돌아다니는 단체입장이 귀찮아서 야구장에 가기가 싫었다.

  누구의 통제도 받을 필요가 없게된 3학년이 돼서야 딱 두번 갔는데 한번은 『무적의 선린상』이 부산상고를 상대로 15:1로 대승한 대통령배 결승이었고 또 한번은 큰 싸움이 나서 야구는 전혀 못 보고 중간에 빠른 발을 이용해 도망나왔다.

 

   이상하게 학교를 졸업하고 부터는 한동안 야구장을 열심히 다니기 시작했는데 – 확실히 공부 못하고 어렵게 졸업하는 애들이 모교에 대한 애착은 더 강해지는 모양 – 내 문제는 명색이 직장인이라는 놈이 경기 시간에 관계없이 학교의 전 경기를 관람했다는 것.

 

 더 이상 우승의 기대를 가질 수 없게된 1982년 부터는 잠깐 프로야구에 열광했다가 곧 흥미를 잃게 됐는데 그 이유는 대략

     OB 베어스의 김우열이 더 이상 홈런을 치지 않아서

     MBC청룡의 이길환이 생각만큼 잘 던지지 못해서

     대륙간 컵 참가로 이해창과 김재박의 프로 입문이 늦어져서

     생각해보니 전두환이가 우덜 눈 가릴려고 준비 안된 선수들에다 교포 퇴물들 불러서 옷만 갈아입혀 만든 프로야구라서

등등 이었다.

 

  나중에 김건우와 박노준이 대학을 마치고 프로에 들어갈 때(, 이 친구들은 국제대회에 뚜렷한 성적이 없는데 군대를 안간 것 같다), 박노준이 연봉 협상과정에서 “학생 시절 선동열 선배보다 못한게 없다”라고 사자후를 토했다는 신문기사를 보면서 호젓이 웃었다.
 
주유의 부음에 접하여 제갈량이 남몰래 웃었던 것 처럼….
낄끼이르. .

http://goldlion.donga.com/goldlion64/gold64_spe4.html

by 孤로운늑대 | 2010/03/12 12:08 | 우리 말에 대하여 | 트랙백(2) | 덧글(1)
아래 글. 우리 말로 된 Joan Baez의 무용담.

오래된 낙서들을 "파란"으로 옮기려 합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어쨋든 더 이상 엠파스에다가 이 짓꺼릴 해고 싶진 않네요.  



http://blog.paran.com/only1wolf/33635671

번역에는, 내가 보기에 좀 문제가 있다.

문맥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지나친 의역이 아니었는지.

 

하여간,

이 시기에 좋아하는 역시 “J”로 시작하는 가수가 하나 더 있었는데 통 생각이 안난다.

장년 치매가 오나보다.

Both sides now, Ace of sorrow, Angie 등등 생각하면 정말 주옥 같은 노래들…,

그리고 너무나도 아련한 중학생 시절이다.

 

아래는 우리 말로 된 Joan Baez의 무용담.   ^^...



























Ann Landers 보세요.

일리노이 주에서 사는 전 학우의 편지를 읽었을 때처럼 감동한 적은 없었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고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하는 것을 피했습니다. 그렇게 한데에는 다 이유가 있답니다.

 

           45년 전 당시 저는 유럽에서 미국에 갓 이민왔었죠. 저는 영어도 서툴렀고,, 제 옷도 헤어스타일도 잘 나가는 그룹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저에 관한 것은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 아이들이 키득거리는 것이며 놀리는 것을 저는 참고 견뎌야했으며 점심시간에는 항상 혼자 밥을 먹었습니다. 한번은 용기를 내어 제 16번째 생일에 여자애 여섯 명을 초대했죠. 그랬더니 온 애는 한 명뿐이었는데, 그 애도 일찍 갔습니다. 그날 밤 울다가 잠이 들었다는 것을 제 부모님들은 몰랐죠.

 

           그러다가 2학년이 되자 엄청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여자애가 절망감 속에 빠져 있던 저를 구했던 것이죠. 우리는 금방 친구가 됐고, 그 애는 점심시간에 저와 함께 밥을 먹기 시작했어요. 그 애도 잘 나가는 그룹의 무시를 받았지만, 신경을 쓰지 않더라고요. 그 여자애는 마치 그런 애들과는 다른 드럼 연주자의 복소리에 따라 행진을 하는 것 같았죠. 자신만의 음악을 갖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어느날 오후 그 여자애는 우리 집에 놀러왔는데 자기 여동생을 데리고 와 제 여동생과 놀게 했어요. 우리는 아주 친해졌어요. 그 여자애는 기타를 치면서 마치 천사처럼 노래를 불렀죠. 곧 그 애는 USO 클럽에 가서 군인들에게 노래를 부르는 곳에 저를 초대했어요. 가는 곳마다 그 애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어느 날 밤에 USO클럽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저는 그 애가 앞으로 유명해질 것이라고 10달러 내기를 걸었는데, 실제로 유명해졌어요. 그 애의 이름은 Joan Baez입니다.

                   -         캘리포니아 썬시티에 사는 로지 허츠가(현재 이름은 리러 바이올렛)

 

로지에게

참으로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로군요. 조운 바에즈가 이 칼럼을 보거나 조운을 아는 사람이 이 글을 보고 말해줬으면 좋겠군요. 우리는 이제, 조운 바에즈는 목소리가 경이로울 뿐만 아니라, 마음씨도 비단 같고, 베푸는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09. 8.23

by 孤로운늑대 | 2009/08/23 15:57 | 트랙백 | 덧글(1)
오래된 것은 아름답다. Ah, Joan Baez!!!

오래된 낙서들을 "파란"으로 옮기려 합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어쨋든 더 이상 엠파스에다가 이 짓꺼릴 해고 싶진 않네요.
 




                     http://blog.paran.com/only1wolf/33496626#


 

모든 걸 지들 멋대로, 돈으로 정리해뻐리는 재수없는 자식들.

 

70년대에 통기타로 나는 너를을 두드릴 수 있었다면

그래서 Folk Pop에 미쳐본 적이 있다면…,

이 사람을 기억할 것이다.

 

 

노래책이 있었다.

세광음악사였는지

교과서가 아닌 노래책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라디오에서 나오던 노래, 형들이 부르던 노래가글쎄, 악보와 함께 담긴 노래책이 있다는 것이 너무 놀라웠다.

 

거기 밥 딜런, 닐 다이어먼드, 폴 앵커니 존레논이니하는…, 그리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많은 미국 가수들과 함께 그의 사진이 있었다.

키 큰 풀 밭에 기타를 안고 다소곳이 앉아있는 청초한 모습.

왼 쪽 어깨로 흐르는 광선에 긴 머리카락의 반은 역광으로 하얗게 색이 빠진 채

반전(反戰)이든 호전(好戰)이든 이념이고 지랄이고,

그저, 그만의 청아한 색깔로, 철학적 가사의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던 사람.

시대를 풍미했던 여류 아티스트의 사진.

 

 

작년 겨울 영어를 제대로 공부해보려고 Ann Landers 의 인생상담」라는 책을 한권 샀다.

Counseler Ann Landers가 사람들로부터 편지를 받아 문제에 대한 답을 주고 수다를 떠는 이야기인데 다 외워볼 요량으로 샀고 반 정도 외운 것 같다.

어쨌든 거기서 조운 바에즈를 다시 만났다.

그의 이야기는 아래와 같다. .

 

 

 

 

 

12. Joan Baez was my angel

Moved 감동받은 / attend 참석하다 / reunion 동창회 / with good reason 다 이유가 있는 / snicker 낄낄대며 놀리다 / get up the nerve to 용기를 내어 ~하다 / cry oneself to sleep 울다 잠이들다 / junior year 2학년 / despair 절망 / USO united Service Org / big hot 인기쟁이 / heartwarming 마음을 따뜻하게하는 / generous 베푸는

 

Never have I felt so moved as when I read the letter from “Former Classmate in Illinois.”  I, too, have avoided attending my high school reunions.  And with good reason.

It was 45 years ago, and I had just come to America from Europe.  My English was not good,  and the “in-crowd” didn’t think I had the right clothes or hairstyle.  Everything about me was wrong.  I had to endure their snickering,  and I always ate alone at luchtime.  I once got up the nerve to invite six girls to my 16th birthday party.  Only one girl came,  and she left early.  My parents never knew that I cried my self to sleep that night.

In my junior year,  something wonderful happened.  Another girl saved me from despair.  We became friends instantly, and she began to join me at lunch.  She was also ignored by the “in-crowd,”  but she didn’t care.  She marched to a different drummer.  She had her own music.

She came to my home one afternoon and brought her little sister to play with mine.  We became great friends.  She played her guitar and sang like an angel.  Soon she invited me to join her as she visited USO clubs and sang for the soldiers.  She was a big hit wherever she appeared.  One night on the way home from a USO club,  I bet her $10 she would become famous – and she did.  Her name is Joan Baez.                       - Rosie Herz(now Rita Violette) of Sun City, Calif.

 

Dear Rosie

What a heartwarming story.  I hope Joan Baez sees this column or that someone who knows her will bring it to her attention.  We now know that in addition to her marvelous voice,  Joan Baez is a beautiful person with a loving and generous heart.

 

 

 

 

역시 그 사진은 어디에도, 없다.

너무 오래됐지.

그 노래책도 낡았고, 그걸 보던 국민학생도 이제 낧았으니까

~


'90. 8.12

by 孤로운늑대 | 2009/08/12 13:36 | Empas 붕괴 후 | 트랙백 | 덧글(0)
09. 7.21 한강은(?) 되살아나나 보다.

밤에 나가서 둔치를 걷는 일은 – 교양없는 것들 때문에 짜증나는 일도 많지만 – 이젠 내게 이빨닦는 일이 돼버렸다.

이빨닦는 일이 뭐냐고?

하기는 엄청 구찮고, 안하면 찜찜한 그런 야리꾸리한 과업…

 

밤길을 걸으러 나갔다.

마냥 걸어서 – 내딴에는 빨리 - 거의 둔치 끝을 1㎞ 정도 남겨 놓았을 때 바닥에 엄청 큰 거미가 지나가고 있었다.

달리기를 할 때 입으로까지 날아드는 날파리들을 잡아먹는 “아군”이므로 밟지 않고 피해갔다.

 

둔치 끝에 가서 늘 하던대로 세수를 하고, 코를 풀고(♬), 담배를 두어대 피면서 기구에 몸을 싣고 운동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고 다시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얼마 안가서 바닥을 기고 있는   그 “아군”을 하나 더 볼 수 있었고 곧 그것이 거미가 아니라 민물게라는 것을 알았다. 

 

뿐만 아니라 그런 고된 행군을 하는 우군이 하나 둘이 아니라 군데 군데 있다는 걸 알았다.

“저것들이 저러다 다 밟혀죽지.” 하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집어서 강 쪽으로 던져 주려다가…

나라도 생태계의 질서를 파괴하지 말자라는 생각에 – 솔직히 허리를 굽히고 고것들을 집으러 다니기가 구찮아서 – 참았다. 

 

한강이 살아나는 모양이다.

그 옛날, 이불 빨래감을 잔뜩 담아 이고 동작동을 향하시던 어머니와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코 끝 찡한 시절이 생각났다.

수양버들이 축축 늘어져있는 3한강교와 하얀 모래밭.

그 아름다운 시절이…  끝.

 

가면서 찍은 첫번째 사진이다.

시커먼 건 당연히 내 머리통이다.

크군.






 

돌아오는 길에 찍은 사진이다.

이미 어두워졌고, 교량을 비추는 불빛으로 세상이 붉은 색이다.

by 孤로운늑대 | 2009/08/12 13:31 | Empas 붕괴 후 | 트랙백 | 덧글(0)
9호선도 나온 최신 지하철지도(PDF 첨부)

할 말이 없다.

08.12월 개통 예정이었는데,
고거 바라고, 하루 두시간 반씩 차 속에서 보내면서 열세달을 삼성동을 왔다갔다 했는데,
일 끝나고 나니까, 이제 개통이라니.


그런데, 이 지랄로 6.12 개통은 정말 되는거야.

어제도 보니까 일을 하던데… 

by 孤로운늑대 | 2009/06/08 13:24 | Empas 붕괴 후 | 트랙백 | 덧글(0)
둔치 유감. 좁은 자전거 도로에서는 남을 생각하고 질서를 지키자. 0

한강을 따라 강동, 강남에서 강서지역까지 둔치가 조성되어 있다.

서울시는 90년대부터 19.4킬로의 자전거 도로 어쩌고 했지만 실상 얼마전까지 도로는 군데 군데 끊어져 있었으니 사실상 환상(環狀)의 산책로 운운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내가 사는 염창동은 강서 쪽의 둔치와 인접해있었다.

그런데도 주거지역에서 불과 찻길 하나 너머에 있는 둔치에 접근할 방법이 거의 없었다.

주말이면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해발 30여미터의 중미산 꼭대기에 올라 강변 둔치를 달리는 자전거와 인라인 스케이트의 행렬을 건너다보면서 나도 여의도 쪽으로 둔치에 들어가서 놀아볼까하는 생각을 자주했었다.

불과 2~3년 전에도 나는 둔치에 가자는 아이의 손을 잡고 올림픽대로 목동아파트 출구에서 이어지는 찻길을 무단횡단하여  긴장 속에 둔치에 진입할 수 있었다.

물론 가봤자 쭉 뻗은 도로밖에 없었지만, 아이는 좋아했고…,  돌아올 때도 같은 방법으로  길을 건널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재작년인가 퇴근 길에 동네의 보도블록이 갑자기 빨간 색으로 바뀐 것을 알았고, 이것들이 또 세금갖고 "보도블록바꾸기 놀이"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들어오다가 둔치가는 길의 이정표를 보게 되었다.

그래서 주말에 아이와 가봤더니 정말 올림픽대로 아래 터널이 생겼고 그 터널을 통하여 둔치로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집에서 쉰다는 건 참 좋은 것이다.

직장도 있고, 정례화된 급여도 있으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 생활이 1달이 넘어가면서 체형이 점점 이상해진다는 자각 속에 - 항아리형으로 ^^ - 나도 걷기같은 데에 좀 신경을 쓰게 됐고, 인적이 드문 때를 골라 둔치에 나가곤 한다.

(둔치에 인적이 드문 때는 사실상 없다.)

자전거를 타고 한번, 걸어서 두번 둔치의 끝까지 가 본적도 있다.

 

2,3회 둔치를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내가 움직이는 거리에 대해 사알 살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70년대엔  행군시의 “큰 걸음”을 대략 76㎝로 간주했었다.

나는 군대식으로 발을 맞추는 행군이 아니라 자유 보행이므로 이보다 약간 넓을 것이고 그럼 80㎝ 정도로 계산할 때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의 거래는 대략 64보가 나오니까 50m로 계산이 되었다.
그럼 맞는다.

야범(FM : Field Manual)에는 전신주간의 거리가 50m로 되어 있다.

이런 건 교련시험에도 문제로 나오곤했다.

실거리 사격을 위해서는 거리 측정이 필요하므로…

 

둔치를 자주 나가면서 매 1㎞마다 “여의도 기점으로부터 몇 ㎞”하는 이정표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왜 이정표가 안보였었지? 땅만 보고 다녔었나.

헤아려 보니 이정표와 가로등의 위치가 일치하지는 않는 가운데 매 1㎞마다 20개의 가로등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고, 내가 1㎞를 걷는데 1030초에서 11분이 걸린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터널에서 첫번째 이정표 여의도 기점으로부터 8까지 가로등이 4개 있고, 둔치 끝 공터 입구에 여의도 기점으로부터 13라는 이정표가 있으니 내 이동거리가  5.2 ㎞, 공터에서 담배피면서 재털이찾아 서성대는 거리도 있으니 왕복 11 ㎞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크게 휘어진 둔치를 걸으면서도 내가 어디쯤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가로등 숫자를 세는 것이 아니라 매1㎞를 1030초에 지나므로 시계를 보고 알 수 있다.

하여간 좋다.
잘난 척하자는 것이 아니라, 좁고 지루한 둔치에서는 조금 더 시민정신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특히 여자들…

일정 숫자 이상의 여자들이 모이면 그만큼 모인 술 취한 남자들보다 더 시끄럽고 더 위험하다.

떼를 지어 다니는 인라인 스케이트나 자전거의 무리들 속에는 항상 여자들이 끼어있고 이들은 매우 요란하고 시끄럽다.

마치 제세상을 만난듯이 편도 1차선의 자전거도로에서 "해갈"을 해댄다.

며칠 전에는 밤 열시쯤 걷고 있는데 앞에서 한명의 남자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나를 향해 오고 있었다.

갑자기  바로 뒤에서 “파이팅~”하는 굵은 여자 목소리가 뒤에서 울려퍼져서 돌아보게 되었다.

나를 지나치는 남자는 형식적으로 역시 “파이팅!”이라고 응수해주었고, 내 뒤에서 튀어나온 여자 두엇은 역시 세상을 만난듯이 희희낙낙 예의 그 착 달라붙는 요란한 운동복을 입고 - 스케이트를 지쳐 나갔다.

 

나도 젊었을 때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통일로변에서 나처럼 야하게 생긴 오토바이를 탄 사람을 만나면 오른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곤 했지만, 야밤에 그 좁은 길에서 그럴 필요가 있을까.

왜 요즘 젊은 여자들은 창피한 것도 모르고 남을 의식하지도 않을까.

더욱이 대부분의 국민이 영어를 읽고 쓰는 나라에서 이 망할 “파이팅”이라는 구호는 도대체 웬 말뼉다귀인가. 재수없게… 

왜인들이 “간바레!”라고 하는 걸 보면 이건 일제의 산물도 아닌 것 같다.

제발 커피 영어, 아이스크림 영어는 이제 그만 몰아내자. 플리이즈~  낄끼이르.

 

 

 

또 있다.

횡대로 다니지 좀 말자.

자전거도로는 편도1차이므로 한쪽 차선에서 3대는 불가능하지만 두대는 나란히 주행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뒷사람이 중앙선을 넘기전에는 자기를 빠져나갈 수도 없고, 보행자라도 있으면 이를 피하기 위해 길이 꽉 차게 된다.

할 이야기가 있으면 내려서 하든가 다방에서 해라.

왜 자전거를 타고 나란히 가며 수다를 떨고 재랄들인가.

 

멍청히 걷고 있노라면 스칠 듯 위협적으로 지나가는 자전거들도 있다.

둔치를 자전거전용도로라고 생각해서일까.

 

하긴, 이런 사람들도 있긴하다.

그날 내가 본 어떤 멋있는 젊은이들은 앞 사람의 어깨에 오른 손을 짚고 가는 십여명의 인라인 스케이터였는데 선두에 선 사람이 추월을 할 때 피추월자에게 “왼쪽으로 지나가겠습니다.”라고 일일이 신호를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한줄로 신속하게 앞사람을 추월한다.

둔치는 이런 사람들에게만 개방돼야 한다.

 

 

먹고 사는 어려움에서 헤어났으니…,

이제 서로 부끄럽지 않은 시민이 되기 위해 노력하자. .



 
09. 5.22  

by 孤로운늑대 | 2009/05/24 18:33 | 담배, 이 웬수!! | 트랙백 | 덧글(2)
늦은 밤, 집에서 라이터가 켜지지 않을 때…

 

 

처가 생활력강한 또순이이고, 억척인건 인정하지만 솔직히 살림을 잘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아이가 이렇게 커지기 전엔 자주 냉장고에 유통기한 넘긴 걸 보곤 했으니까.



그걸 보고 뭐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남자가 쪼잔하게 그런 거나 검사한다고 그럴까봐 참는 것인데

    처가 그렇게 말을 할까봐 아무 말도 하지않는 거랑 어느게 더 소심한걸까?

 

  

저녁 때부터 라이터가 잘 켜지지 않았다.

밤 열한시 반이 넘어서 담배를 피우러 계단에 나갔을 때는 아예 돌만 튀지 불꽃이 일어 나지를 않았다.

밖에는 비도 오고, 운동하러 나간다고 둘러댈 계제가 아니다.

아니다. 이미 상점은 문을 닫았다.

난감했다.

담배는 피우고 싶을 때 피워야 가장 효율이 좋다.

그때에야만이 니코틴 6.0, 타르 0.6을 온전히 빨아들일 수 있다.

 

저것들을 빨랑 재우고 가스레인지로 불을 붙여야 하나.

아이가 잘라면 한시간은 더 개겨야 할텐데,

그 때까지 입 안에 침이 가득 고인채로 시간을 보내야 하나.

제기랄.

 

라이터 개스가 어떻게 생겼더라.

개스가 있겠나 하면서 기냥, 아무 생각없이 신발장 문을 열고 발돋움을 해서 윗 칸을 둘러 봤다.

그리고는, 정말 오랜 만에 『유엔성냥』을 봤다.

           

 

우리 마누라.

살림 잘한다.

낄끼이르.   .

 



감격스러워서, 신발장의 높은 칸을 휴대전화로 촬영했다.

유엔성냥 도 부족해서 갑성냥까지 있다.

그 옆에 있는 게 파이프용 명품 잎담배 Captain bLACK,
그리고 우리시절의 필수 상비약 에프킬라가 서 있다.

 

09. 5.22  

by 孤로운늑대 | 2009/05/22 13:34 | 담배, 이 웬수!! | 트랙백 | 덧글(5)
상쾌한 뉴스. 순천만은 앞으로도 아름답게 보존될 것 같다.

 

나는 일찌기 이십대 때 이미 양양 미천골을 마음의 고향으로 삼았다.
초여름 밤, 밤새 물려 올라오는 산메기들에 대한 감회에서가 아니라 주름살없고 윤택한 강원도 첩첩산중의 농부들과 주변의 맑은 하천, 높은 산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삼십대들어 그곳이 여름철마다 잡지에 실리는 꼭 찾아봐야 할 휴양지 등으로 소개되고 어느 날엔가는 꿀벌 천만마리가 사는 계곡 등으로 소개되는데 대해 또 하나의 비경이 훼손되지 않을까하는 어떤 조바심마저 들었다. 

그곳을 그때까지 십여번이나 방문했지만 삼십대 중반에 찾았을 때 이미 – 그때는 나도 차를 가지고 갔었다 – 울타리가 쳐지고 입장료를 받는 지방자치제의 세원(稅源)으로 변한 것을 보고 여기도 조졌다는 생각에 서글퍼졌었다.

 

이 나라의 지방자치는 경제규모에 비해 턱없이 낮은 민도가 만들어낸 흉물임에 틀림없다.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 쉐이들은 축제발굴에 혈안이다.

전국은 이름도 처음듣는 수천가지가 축제가 연중 계속이고, 무슨 미인, 무슨 아가씨는 또 왜 그리 많은지, 노래건 문학작품이건 전수 지네 동네 산물이랍시고 끌어들여 축제를 양산해낸다.

 

개발되지 않은 아름답고 어설픈 산하에 대한 애정은 서울 사람들만이 갖는 향수는 아닐 것이다.

이농한 도시의 기층민중은 오히려 더할지도 모른다.

하기야 서울에 서울 사람은 별로 없으니 – 서울이 하이타이 티거스(Haitai Tigers)의 홈구장임은 이미 주지의 사실 아닌가. – 이 나라는 전국민이 도시 사람이 아닌지도 모른다.

 

 

내가 순천만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가진건 아마도 재구포구기행을 읽고나서부터가 아닌가 싶다.

곽재구의 글 자체도 아름다웠지만 흑백사진으로 실린 너른 갯벌, 그 사이로 흐르는 유려하게 휘어진 물길, 순결한 습지 이런 것들에 대한 외경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여기 진짜 산하를 사랑하는 공무원집단이 있다.

지역을 찾는 관광객의 숫자를 보고 쾌재를 올리며 축제를 기획하는 양아치 공무원들이 아니라 향토와 땅에 대한 애정으로 이를 지키고 남기기 위해 정책을 전환한 사람들이다.

 

아침이면 화장실에서 담배 두개피와 함께 조간신문을 읽는다.

매일 이런 상쾌한 뉴스를 읽었으면 좋겠다.

조국을 진실로 사랑하고 후손과 이땅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 뜻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여기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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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5.21 조선일보

순천만, 인간의 흔적을 지우다

  • >순천=조홍복 기자 powerbok@chosun.com


  • 농지·식당·전깃줄 없애고 내륙습지 등 옛모습 복원
    관람객 제한·유료화 추진 순천시 "관광보다 생태계"

    20일 오전 바다와 마주하는 전남 순천시 도사동 안풍들녘. 10여년 전 순천만 하구를 파내면서 채취한 모래로 쌓은 간척지(10만1015㎡)로 이후 준설토 야적장으로 방치돼 왔던 이 땅이 최근 생명이 흐르는 젖줄로 변모하고 있었다. 순천시가 기획재정부 소유의 이 간척지를 작년 12억원을 들여 사들인 뒤 모래톱과 작은 섬이 있는 대규모 담수 내륙습지로 조성하고 있는 덕이다.

    이미 시는 이 간척지 중간지점에 초등학교 운동장 크기의 담수습지를 조성해 뒀다. 높이 2m가 넘는 갈대군락과 습지 사이에는 도요물떼새와 저어새, 노랑부리백로 같은 철새 수백 마리가 흩어져 있었다. 이 새들은 1.5㎞가량 떨어진 순천만 대대포구 갯벌에서 먹이를 잡아먹고는 밀물이 들 때 이곳으로 날아들어 휴식한다.

    황태주 시 관광진흥과 계장은 "간척지가 개인 소유로 전환된 뒤 개발될 우려가 컸다"며 "추가로 50억원을 투입해 내년쯤 인공 습지를 모두 완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순천만 탐방 유료화

    작년 국내외 관광객 260만명이 찾은 순천만은 세계 5대 연안습지 중 하나다. 하지만 전국적 관광지로 급부상하면서 자연환경 훼손 우려도 함께 커졌다. 이에 따라 순천시는 편의시설 개발로 관광객을 유치하기 보다는 만 주변에 철새들 보금자리를 확대하는 쪽으로 정책을 변경했다. 개발보다는 온전한 생태자원을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한 보전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시는 아예 주변 음식점을 모두 철거해 내륙습지와 예전의 자연 모습 그대로를 복원할 계획이다. 음식점 9곳 중 6곳은 이미 철거했고, 나머지도 협상을 통해 자연으로 되돌릴 계획이다. 이런 식으로 순천만 주변 농지와 식당, 준설토 야적장을 꾸준히 매입해 내륙습지 등으로 복원한다. 내년까지 모두 97억원을 들여 50만1330㎡ 땅을 사들일 계획으로, 이미 80%를 매입했다. 대대동 순천만자연생태관 뒤편 주차장 1만6529㎡ 부지도 내륙습지로 조성했다.

    순천만 탐방 유료화도 추진한다. 현재는 생태관을 제외한 갈대탐방로와 용산전망대는 무료로 탐방이 가능하다. 하지만 오는 10월부터는 자연생태공원 입구에서부터 습지 관람료를 징수할 예정이다. 입장료는 성인 2000원, 학생 1000원, 어린이 500원. 갈대탐방로가 있는 순천만 핵심보전지역을 보전하기 위해 장기적으로는 '인터넷 예약제'도 실시할 예정이다. 관람객 숫자를 하루 1000명 정도로 엄격히 제한해 순천만 훼손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지찬혁 서울환경운동연합 습지센터팀 간사는 "순천만 갈대밭과 철새 보호를 위해 관광객 숫자를 제한하는 것 자체는 바람직하다"며 "다만 생태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도심 전체가 친환경적으로 변화해야 하는데, 지금의 순천은 이런 모습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2013년 국제정원박람회 개최"

    대규모 숲을 조성해 순천만 생태계를 보호하는 '2013국제정원박람회'가 순천만 하류에서 5㎞ 떨어진 지점에서 열린다. 시는 최근 정부로부터 이 행사를 국제행사로 치르는 방안에 대해 승인을 받았다. 이제 국제원예자생산협회(AIPH) 승인만 남겨뒀다. 영국·독일·프랑스·일본 등 AIPH 28개 회원국을 초청하기 위해서는 오는 10월 스페인 사라고사에서 열리는 이 단체 총회에서 승인을 얻어내야 한다.

    시는 966억원을 들여 도심과 순천만 사이 6㎞ 구간 150㏊(45만평) 부지에 일본과 프랑스 등 세계 각국의 문화와 전통을 담은 30개 정원을 꾸민다. 박람회를 치른 뒤에는 이를 시민을 위한 공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양복완(부시장) 국제정원박람회 유치단장은 "일부 공간은 홍수(연중 5일 가량) 조절용으로 물을 모아두는 저류지(貯溜池)로도 활용한다"고 말했다.

    순천만자연생태공원 주변 농경지 300㏊에 자리한 전봇대 282개도 내년 말까지 모조리 철거하기로 했다. 천연기념물 228호로 지정된 흑두루미 같은 대형 철새를 위협하는 전깃줄을 없애기 위해서다. 높이 30m의 이동통신 기지국 철탑 3개도 인근 야산으로 옮긴다. 대대동 동편 마을에 사는 한석주(69)씨는 "공사기간 중 전기가 일시적으로 끊기면 당장 논에 물을 댈 수 없어 불편하지만 순천만을 보존하자는 데 주민들이 모두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지금의 순천만자연생태관은 5㎞ 후방으로 옮기고 인근 주차장도 폐쇄할 방침이다. 이 생태관을 대신할 국제습지센터를 450억원을 들여 '2012여수엑스포' 개최 이전에 만든다. 이렇게 되면 관광객이 차량을 직접 몰고 현재 생태관이 있는 핵심보전지역까지 접근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게 된다.

    최덕림 시 관광진흥과장은 "생태관을 후방에 세우는 것은 장기적으로 순천만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서"라며 "탐방 동선이 더 길어지고 다양화할 수 있어 순천만을 깊이 이해하고 느끼는 데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관규 순천시장은 "무차별적 관광객 유치보다는 생태계 보전이 우선이라는 게 시정의 큰 원칙"이라고 말했다.

    순천만은 총연장 40.45㎞의 해안선으로 둘러싸인 갯벌·갈대밭·염습지로 구성돼 있다. 전체 갯벌은 22.6㎢로 이 중 간조 때 12㎢ 가량이 모습을 드러낸다. 순천만은 2003년 12월 국내 세 번째로 '연안습지 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천연기념물 흑두루미를 포함한 희귀조류 11종 등 200여종의 조류가 월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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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孤로운늑대 | 2009/05/21 13:32 | 時事雜記 | 트랙백 | 덧글(0)
The Concert in Central Park - Paul Simon and Art Garfunkel

 

86분에 걸쳐서 폴 사이먼과 아더 가펑클의 1981년 센트럴팤 공연을 봤다.

41년생인 이들이 마흔두살 때니까, 내게는 xx두살 때이고, 그 시절이면 내가 군대 영장 받아놓고, 매일 술처먹으러 다니던 시절이다.

나는 중2때부터 이들의 음악에 반해있었고 고등학교 때는 60분짜리 테입의 양면에 "The sounds of silence"만 담아서 들을 정도로 열광했었다. 어른이 되면서 어느 사이엔가 취향이 클래식으로 빠졌었지만 더 나이들어서 세상의 진실은 퍼퓰러에 담겨있다는 걸 깨달아 포크와 팝으로 돌아왔다
.

그러나 깨끗한 화면, 좋은 음질로 재현되는 그들의 유려한 하모니와 절묘한 통기타의 애드립을 들으면서 나는 왠지 자꾸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의 서글픔이 지금 내가 잘 못나가서만은 아니고, 그들의 하모니에 탐닉하던 때 나는 공부도 괜찮게 하고 운동도 잘 하는, 세상에 무서운 사람 딱 한명있는 건강한 십대 소년이었다.
하다못해 지금처럼 이렇게 5년후의 내모습이 불을 보듯 뻔한 엿같은 인생은 아니었다.

나만 그런 비감에 빠진 것이 아니라 청중도 마찬가지였다.
폴의 비트가 고막을 흔들 때마다 광적인 몸짓으로 환희에 떠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옆에 선사람을 껴안고 울듯한 표정으로 하염없이 서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선공연이라서 이렇게 많은 청중을 동원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물경 50만으로 집계된 청중은 내 기억에 첫번째 woodstock에 운집했던 인파가 그 정도였다 - 70년대 들어 조지 맥거번 유세 공연이후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던 이 두 거물들의 모습이 사무치게 그리웠으리라.

 

둘은 포크음악의 영웅이었지만 음악적 출력이외에는 너무나 판이한 스타일이다.

단구에 달라붙은 검은 머리, 인디언보다는 히스패닉에 가까운 눈매, 죽어도 앵글로 색슨의 후예로는 보이지 않는 폴 사이먼.

큰 키에 푸하게 뜬 악성 고수머리, 킬러와도 같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동자에 전형적인 백인의 외양을 지닌 아더 가펑클.

항상 비슷한 의상도 그렇다. 라운드 넥의 흰 언더셔츠에 검은 싱글을 입은 폴, 청바지에 밝은 색 남방, 검정 조끼를 받쳐입은 아더.


기타를 안고 고개를 반쯤 돌리고 눈 감은채 노래하는 폴. 청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반쯤 꽂거나 팔짱을 끼고서도 얼굴을 찡그리고나 몸을 비트는 적없이 정말로 자연스럽게 고음을 풀어내는 빈 손의 아웃사이더 아더 가펑클.

 

고교 시절부터 친구였고 파트너였으나 아더는 언제나 and 이후에 나오는 조력자였다.

둘이 갈라선 이유는 음악에 대한 견해, 음악성의 차이라고 하지만 폴의 음악성이 뛰어난 만큼 어떤 사람의 이야기대로 목소리 밖에 가진 것이 없는 아더는 항상 그 그늘에 있었다. 그래서 영화 “졸업”의 음악적 성공 이후 오히려 영화배우쪽으로 돌아서고 해체되기 전부터 각자 솔로로 활동해왔다.

 

오늘 공연에서는 모르는 노래들도 많았다. 하긴 내가 그들의 음악을 3~40 곡 안다고 해서 모든 레파토리를 꿸 수는 없는 일이고, 그래도 좋은 것은 어디에서부터 듣기 시작해도 30초도 안돼 그들만의  음악이란 것을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개중에는 로큰롤의 영향을 받은 꽝꽝대는 빠른 음악도 있었고, 그들 특유의 진정한 포크음악도 있었지만 다 좋았다.

열심히 활동한 세월은 불과 5~6년에 불과해도 이들의 레퍼토리는 이만큼 풍부하다.

아더의 미성이 돋보이는 Benedictus」는 아예 나오지도 않았고 그점에서는 「El codor pasa」도 마찬가지였다.

잉카의 멜로디를 폴이 채보했다는 이 노래는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한국에서만한 인기가 없는지, 그들의 음반에서도 항상 빠져있다.

집에 있던 대여섯장의 원판에도 항상 빠져있고, 이른 바 빽판이라 불리던 싸구려 국산 음반에만 있었다.

 

 

라이브의 좋은 점은 악보를 뛰어넘는다는 점이다.

언젠가 TV에서 자료화면으로 제공된 그들의 무대를 잠깐 본 적이 있다.

The sounds of silence로 기억되는데, 아더가 먼저 그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하고 두어소절 지나서 기타를 메고 천천히 걸어나오는 폴이 지금까지 한번도 듣지 못했던 하모니를 만들어 냈다.

The sounds of silence가 실린 음반만 서너장을 갖고 있었고 각각 다른 그 하나 하나를 모두 수십번씩 들어봤지만 그날의 하모니는 난생 처음 듣는 것이었고 - 이 정도면 cadenza라고 불러줘야 한다 - 그 꾸밈음은 아더의 목소리와 겹쳐져서 너무나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냈다. 도저히 머리로 계산하거나 화성의 결과를 예단한 배치로는 생각할 수 없는 절묘한 하모니였다. 바람의 흐름, 청중의 열기와 평균치의 체온, 동료의 맥박소리만이 그러한 자유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수 있다.

 

결코 임기응변으로 치부하기에는 격이 다른 그러한 자유로움이 사람들을 무대로 부르는 것 같다.

오늘 공연에서 그들의 The boxer는 집에 있었던 어느 음반보다도 더 아름다왔다.

맨 처음 “I am just a poor boy Though my story's seldom told I have squandered my resistance for a pocketful of mumbles such are promises” 부분을 부를 때 “I have squander에서 노래를 부르던 아더가 잠깐 발성을 끊자 폴이 힐끗 쳐다보더니 씨익 웃으면서   I have squandered my resistance 라고 풀어 나가던 모습은 비록 이 스코어가 그들의 것이지만 숨표, 쉼표 하나하나까지도 다 지배해야만 가능한 것이고 그러한 여유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리라. 

또한 청중에게 노래로 고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급부받는 것이 아니라, 앞에 있는 수많은 청중조차 같은 편으로 여기고 한덩어리가 되어 즐겁게 노는 물론 피나는 연습의 시간을 가졌겠지만 - 한마당 놀이판처럼으로 보여진다.

 

 

 

In the clearing stands a boxer and a fighter by his trade And he carries the reminders of ev'ry glove that laid him down Or cut him till in his anger and his shame,”에서도 “cut him” 뒤에 폴이 마치 혼잣말이라도 하듯이 “tell me cried out”하던 모습이나 마지막 “I am leaving, I am leaving But the fighter still remains” 부분에서 눈감고 노래부르던 폴이 “this story still remains”하던 것도 정말 좋았다.

 

이들의 노래는 cresc decresc가 숨가쁘게 배치되어 있다.

물론 영어라는 언어 자체의 강세(accent)도 있지만 둘이서 하나처럼 발성해내는 cresc/decresc가 오묘하게 멜로디를 더 살려낸다.

더구나 이들의 육성은 반주와 같은 소리가 난다.

이를 테면  Mr. Robinson」에서 뒤에 깔리는 리듬악기(Mariachi 들의 연주에서 쥐고 흔들거나 돌리면 치키치키하고 이빨닦는 ^^ 소리가 나는 라틴 계통의 리듬악기)와 비슷한 소리가 나는 그들의 음성이나 「The Boxer」에서 “Lie-la-lie Lie-la-lie”할 때 나오는 파공음들. 이런 것들조차 듣는 이들을 위한 배려로 인식된다.

영화 「Mr. Robinson」에서 진실한 사랑은 딸이라는 걸 깨닫고 그 결혼식장으로 물불안가리고 달려가는 더스틴 호프만의 차가 시동이 꺼져갈 때, 그리하여 내연기관의 폭음이 서서히 느려지며 속절없이 멈춰갈 때 이 리듬악기의 박자는 엔진의 RPM과 같이 천천히 느려지며 마침내가 차가 퍼져 버릴 때 정지한다.
중학교 2학년 때 AFKN에서 보내주던 흑백화면이었지만
,  화면을 꾸며주는 음악,영화를 빛내주는 도구로서의 음악이 기막히게 배치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언제 나올까, 나올 때가 됐는데 하며 기다리던 「Bridge over troubled water」나 「The sounds of silence」에 대하여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여기에 「Scaborough Fair」를 추가하면 남성 듀오가 만들어낼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극치라 하겠다.

애초에 단순히 어쿠스틱 기타로 구성되어 그저 음악적 아름다움만이 담겨있던 「The sounds of silence」에 열두줄 기타와 전자기타, 그리고 드럼을 입혀서 하나의 곡 안에 다양한 변화를 입혔던 점이야 음반 기획의 성공이지만 그 이전에 이미 이 곡은 “그저” 대중문화로만 분류될 수 없는 음악적 성취를 이루어냈다.

아니 이들은 이미 악보의 틀을 벗어나 있고, 동료의 호흡만으로도 들고 남, 오르고 내림을 자유로이 조절할 수 있는 음악가들이었다.


 

 

Mariah Carey celine Dion 이 한국에 오면 좌석표가 얼마나할까.

S석 한장에 최소한 25만원은 받아먹을 것이다. 아니 언제부터인가 S석위에 R석이란 것이 생겼고 이것이 더 비싼 표를 팔아먹기 위한 “기냥” 상술이란 걸 우덜은 모두 안다.

 

이들이 한국에 오면…, A석 한자리에 얼마나 할까.

얼마가 되든 나는 일단 표 구하기 대열에 머리를 싸매고 뛰어들거다.

나 자신을 위해. 지나간 시절과 그들이 있어서 아름다웠던 나의 십대를 위해. ..

 

 





< 상당히 젊었들 때 모습이다. 아더의 이마가 태반이 가려져있다. >
 
































< 이들의 사진 중 한국에 가장 많이 깔린 것. 역시 젊었을 때... >

 





























 

09. 4. 4


 

by 孤로운늑대 | 2009/04/04 17:50 | 一瞥…, 음악ㆍ무대 | 트랙백 | 덧글(1)
다시 아이의 출마.

2008. 9. 2 맑음
매주 화목요일은 오후 18시부터 공정관리 회의를 한다.
답답하고, 면목도 없고 정말 참석하기 싫은 회의다.
그 짜증나고 지루한 회의 중간 18:48에 이런 메시지가 왔다.
┏━━━━━━━━━━━━━━━━━━━━━━┓
┃몽이아빠~
┃오늘 몽이 전교어린이 부회장 선거용 피켓..
┃뭐 이런거 만들어야 한다는데 ┃
┗━━━━━━━━━━━━━━━━━━━━━━┛
5학년 학급의 회장은 의무적으로 전교 부회장 선거에 출마를 해야 한단다.
당연히 우리 애도 출마를 해야됐고,
그러니 한마디로 빨랑 들어와서 사역에 임하라는 전통(電通)이다.
기압 바짝 들어서 술기운 일절없이 11:30경에 들어갔다.
이미 처와 아이가 어느 정도 포스터를 구상을 해놓고 있었고,
나보고 출력을 치장하고 클립아트같은 걸로 좀 재주를 부리라는 거였는데
막상 집에 오니 잉크 부족으로 프린트도 안된다고 하고 아아주 깝깝한 상황이었다.
하여간 자정께부터 달려들어서 같이 해기 시작했는데
규정대로 4절지 한장과 8절지 몇장을 다해고 보니 새벽 세시반이었다.





처는 사실 아이가 그런 걸 맡는 것을 썩 바라지는 않았다.
맞벌이 결손가정의 엄마가 학교에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챙겨주기 힘들다는 이유이다.
- 교사도 바라지 않고, 같은 학부형끼리도 직장있는 엄마가 그런 거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도 한다.-
그러나 아이가 되기를 누구보다도 더 바란다는 걸 나는 안다.
다음 날 저녁, 일하고 있는데 퇴근 길의 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
┃ 오다가 학교 들러서 벽보봤어 ㅋ ┃
┃ 아무래도 될거같아 ┃
┃ 아님말고 ┃
┗━━━━━━━━━━━━━━━━━━━━━━┛
그리고 그 주 토요일 신문에 그런 기사가 났다.
초등학교 임원 선거용 포스터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업체들이 이미 있는데
내가 새벽까지 저 지랄 한 거 한 15만원정도면 된다는 보도였다.
미리 알았으면 발주를 했을까?
모르겠다. 끝.
by 孤로운늑대 | 2008/12/28 00:26 | 우리 애 "쫑당" 萬歲! | 트랙백 | 덧글(5)
아이의 발명 숙제. 킥킥...

여름방학 숙제로 뭔가 발명품을 내기로 돼있는 모양이다.
뭘 만들었는지는, 설명을 듣긴 들었는데 정확히 모르겠다.
더운 여름 날을 겨냥한 자동 음료 급수기인지
정말 킥킥이다. 킥킥
근데 배가 불러서 물을 먹기 싫을 때는 어떻게 해지?
혀로 구멍을 막고 있어야 하남?
저 모자는...
생각해보니 결혼 초창기 처랑 설악산 흔들바위 올라가면서 5천원 주고 산 모자이다.
여자들이 모두 저런 모자를 썼고, 예뻐보이길래 나도 씌웠었는데
처는 자기는 저런 모자가 안어울린다고, 그 후로 단 한번을 쓴 적이 없다.
결국 저런 식으로 재활용해는군...


한달만에 왔다지만, 집에 오자마자 또 어린애 짓이다.
지 애기때 갖고 놀던 인형들 죄 꺼내다가 트렘플린에 널어놨따.
저거?
절대 자기가 치우는 일 없다. .



by 孤로운늑대 | 2008/12/27 23:54 | 우리 애 "쫑당" 萬歲! | 트랙백 | 덧글(2)
성탄전야의 퇴근…, 삼성역에서 염창동가는 길

12.24 수요일 맑음.
쉬엄쉬엄 걸어서 삼성역에 와서 시계를 보니 오후 7:57.
사무실에서 삼성역까지 걸어서 8분 걸리는데, 나오면서 담배를 샀으니 아마 7:48에 퇴근을 한 모양.
전철을 탈까 리무진을 탈까 망설이다가 늘 그렇듯이 리무진을 기다리기로 했다.
11시 넘어서 리무진을 타면 등촌동까지 38분에서 45분걸린다.
집까지 걷는데 10분 소요된다.
1시간 반이 걸려도 자시미사에 갈 시간은 충분하다.
사무실에는 차가 막힌다고 몇명이 아직도 남았는데 나는 귀찮고 게을러서 리무진을 기다린다.
기다리는 차는 오지 않고 날은 살살 추워진다.
거리에는 사람도 별로 없고,
- 옛날 헐벗고 굶주리던 70년대의 성탄 전야는 활기에 넘쳤었는데 -
어쩌고 생각하면서 우리 시절의 크리스마스 이브를 잠깐 생각해본다.
거리의 모든 식당은 오늘 하루 메뉴판의 가격을 샤악 다 고쳤지만
이미 모든 좌석은 만원이지고 식당 밖에는 더 많은 젊은이들로 넘친다.
젊은이들만이 아니다.
속없는 “나이백이”들도 역시 거리에 쏟아져 나와 집에를 안가고 개긴다.
여관은 방이 없다.
어차피 대부분의 손님은 아침에 나갈 사람들이 아니지만 그래도 방은 없다.
당연히 요금도 리얼타임으로 올라간다.
그러나 삼성동은 역시 사람이 없다.
삼성동은 강남이 아닌가? 정말 이해 안가는 부분이다.
아직도 차는 안온다.
짜증스럽게 시계를 봤을 때 8:32.
리무진이 두대가 지나갔을 시간이다.
이제 전철을 타기는 억울하다.
내 뒤에서 기다리는 아가씨들의 담화도 내가 하는 생각과 똑같다.
망할 버스가 왜 안오는지, 어떤 일이 있어도 이놈의 버스를 타고야 말리라 어쩌고.
나도 모르게 장갑을 꺼내어 끼고, 반코트의 앞 깃을 여밀까 말까 생각하면서 마냥 남는 시간을 죽였다.
작년 오늘은 야근 후 퇴근해서 직접 성당으로 갔다.
웬 사람이 그래 많은지 처자식을 만나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고 자시미사 두시간 동안 서 있었다. 나중에는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가까스로 아이만 앉힐 수 있었다.
미사 후 성당에서 국수를 주길래(???), 아이와 처와 셋이 한그릇씩 얻어 먹고 걸어서 집에 왔다.
춥지도 않고 가족이 있어서 더 마음 훈훈하고 정말 아름다운 밤이었다.
오늘도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가족과 자시미사에 가고, 오는 길에 포장마차에서 떡볶이와 우동이라도 사주고 싶었다.
곁들여 차가운 소주라도 한 병 마실 수 있다면 난 정말 행복할 것이다.
마냥 기다리니 결국 차는 오기는 왔다. 8:52분에.
처음에는 기사에게 따질 생각이었는데…, 귀찮기도 하고 또 누구도 분개하지 않는데 나만 도라이 짓 할 이유도 없고, 기냥 몸을 좌석에 얹었다.
너무 피곤했지만 잠들지 않으려고 꽤 애를 썼다.
지금 잠들었다가는 또 재수없이 밤을 뜬 눈으로 새우는 경우가 생길지도 모른다.
뉴스라도 보면 좋으련만 TV도 고장나서 브라운관에 주사선만 왔다갔다한다.
게다가 앞자리에는 소곤소곤 어떤 아줌마가 누군가에게 김치담그는 법을 휴대전화를 가르치고 있었고, 그 외에는 전혀 소곤거리지 않고 당당하게 떠는 것들이 서너명이나 있었다.
별 수없이 나도 DMB를 틀고 그 잡음들로부터 놓여났다.
길은 막힌다. 가지를 않는다.
뉴스도 재미가 없다.
매일 똑 같은 울화통터지는 이야기…, DMB는 컨텐츠가 너무 빈약하다.
아니면 뉴스에서 정치, 사회면은 빼든가. 여엄병~
잠이 들었나. 전화가 와서 깼다.
아이가 왜 안오냔다.
차가 막힌다고 했더니 아무리 막혀도 상가에 갔다가 수원에서 출발한 엄마는 이미 집에 왔단다.
조금 있다가 아이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아이의 말투는 항상 이런 식이다. 아니, 글발이 이런 식이다.
『수원에 있는 엄마도 왔는데 왜 늦는지 어이없음』
그때가 10:11이었고 내가 탄 차는 신반포 쪽에 있었다.
삼성동에서 1시간19분간 차로 달렸는데 바퀴가 네모났는지 차가 아직도 신반포 밖에 못왔다는 걸 알고서 진한 후회가 들었다.
맨날 야근해는 놈이 이런 날이라도 좀 애비 노릇을 해야하는데
길바닥은 차들로 넘친다.
눈에 보이는 곳까지 전수 주차장이다.
왜 모두들 기어나오는가.
이런 날, 집에 일찍 들어가면 벼락이라도 맞는 줄 아나.
비신자가 성탄절에 설치고 돌아다니면 벌금이라도 때려야 한다.
성탄절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왜, 차별하는가.
공자와 마호멧의 생일도 공휴로 정해야 옳다.
내가 제정신이라면 이렇게 했어야 한다.
그 시간에 사무실에서 나오면 담배한대 물고 관광객 비슷한 걸음걸이로 걸으면 삼성역까지 11분 걸린다.
5분 이내에 전철이 온다.
아침과는 반대방향 즉 사당 쪽을 향한 차를 타서, 특별한 일이 없고, 내가 조금만 약게 행동하면 충분히 앉을 수 있고 차는 45분 가량 걸려서 당산까지 온다.
차에서 내려서 인파를 헤치고 버스 정거장까지 약 15(이 구간의 소요시간이 나는 절대 이해되지 않는다).
당산역에서 집까지는 차로 7, 버스로 20분 걸린다.
이게 정상적인 삶이다.
남들은 절대 삼천원내고 리무진 타지 않는다.
하여간,
그 다음부터는 그래도 근근히 차가 빠지기 시작했고 등촌동에 접어들어서 내리기 직전에 아이에게 도착을 알리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미 밥먹고 자시미사 가기는 틀렸으므로 나도 면피를 해야 하니까.
칼쌈을 하든 춤을 추든 뭔가해서 아이를 기쁘게 해야 한다.
아이에게서 답장이 왔다.
『만세만세만만세♥』
너무나 따뜻하고 안온한 정이 흐르는 집에서.
처가 사온 케잌, 시금치국과 무채에 배터지기게 밥을 먹고
시간은 이미 11 넘었지만 식탁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다가
아이가 별 것아닌 일에 또 짜증을 냈고, 내가 그걸 뭐라고 혼을 냈고 그래서 또 분위기 쌔해졌고,
나만 또 성질 더러운 놈 돼서…,
기냥 잤다.
다 리무진 때문이다.
일찍 도착해서 성당에 갔으면 그 시간에 경건한 마음으로 미사 중이었을텐데. .

성탄 전야에 기껏 버스나 기다렸다 타는, 아둔한 아빠 집에 올 때까지 이러고들 놀고 있었던 모양이다.





by 孤로운늑대 | 2008/12/26 01:46 | 時事雜記 | 트랙백 | 덧글(5)
겨울에 덕산스파캐슬에 가려거든...

이곳은 결코 싸지 않은 곳이며 에버랜드나 워터피아와도 다르고
그렇다고 일반 온천과도 또 다르니 사전에 알아보고 찾아가시오.
특히 겨울에는 아래 것들을 준비해가면 호젓한 즐거움을 누릴 수도 있소.
단, 눈 쌓인 산길을 운행하는 어려움이 있으니 일기를 확인하고 가시오.
고속도로는 멀쩡해도 산모퉁이에 예상못한 잔설과 빙판이 준비되어 있는 곳들이 있소.
상기 본인은 악천후가 예보된 상태에서 출발했더니 상,하행 모두 3시간이 안걸렸소.
정말 쾌적한 운행이었소.
1. 구명조끼, 모자, 수경 등을 가지고 가시오.
⇒ 자유이용권을 구입해도 저것들이 있어야 입장되는 곳이 있음.
돈내고 빌리면 된다고?
수영복 차림으로 추워서 도저히 1층까지 못 가겠던데.
2. 넓은 수건을 반드시 가지고 가시오
⇒ 다른 온천과 달리 여긴 노천은 완전 벌판과 다름없는 추위를 맞게 됨.
3. 샌들도 갖고 갈 것
⇒ 발이 시려워서 시설과 시설 사이를 돌아다니는 것이 고통스러움.
성인 남자인 나도 발이 시려워서 한 곳에서 담배 한개피를 태우기 힘들 정도였음.
4. 서먹서먹한 젊은 연인들은 꼭 한번 가보시오.
⇒ 외부로 나오면 층마다 욕조만한 풀들이 있는데, 추우니까 사람들이 돌아다니지 않음
독탕을 찾아내는 의외의 횡재가 가능함.
벌건 대낮이래도 날은 춥겠다 보는 사람 없겠다 상대는 수영복차림에. 얼마나 좋아 ♬ .
☞ 젊은 언니, 오빠들!!!
제발 아무데서나 끌어안고 비비지들 마쇼.
정말 요즘 것들은 부끄러운 줄을 모르나봐.
여자들이 더 해! 끝.
by 孤로운늑대 | 2008/12/22 01:28 | 가 볼만한 곳, 가지말아야 할 곳... | 트랙백 | 덧글(3)
기획∙조성된 골든보이의 몰락

권투가 장사잘되던 지난 시절…, 가운데 中과 무거울 重을 합하여 중량급에는 강자가 많았다.

대략 페더급부터 미들급까지를 중량급으로 분류한다면…,

(물론 그래서는 안된다. 언제부턴가 웰터급 친구들이 자꾸만 미들급까지 찝적거리니까 미들급도 중량급이 되었다. 미들급이 우울한 점은 헤비급은 도저히 접근이 안되는데 웰터급은 물론 라이트급 친구들까지 치고 올라온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

슈가레이레너드, 마빈해글러, 토머스헌즈, 로베르토듀란.
이 네 친구를 빼놓더라도 에우제비오페드로사, 훌리오세자르차베스 등등…

맨 앞에 꼽은 세 친구 외에는 주로 중남미의 국민적 영웅들인데…,
그들은 일단 강하고 그래서 경기가 재미있었다.
서로 끼고 엉기지 않고, 양선수간에 수없이 쏟아지는 펀치는 상당한 파괴력의 유효타도 많고 그래서 경기도 끝까지 가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한편 페더급 아래서는,

중학교 때 나의 영웅 알폰소 자모라는 자신을 스파링 파트너로 쓰며 키워준 자라테에게 도전했다.

둘은 절친한 친구사이였으며, 각자 독자적인 상품성이 있었으므로 굳이 대전을 가져 우열을 가릴 필요까지는 없어 보였다.

즉 명목은 WBA WBC 통합챔피언을 뽑자는 것이었지만 미국 시장에서 경량급으로 보기드물게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두 명의 Z Boy”를 붙여 돈을 벌어보자는 프로모터들의 상술이었을 것이다.

아마 그당시 자모라가 28전 전ko승 정도였고, 자라테는 당연히 이보다 전적이 많아서 42 41ko승 정도였던 것 같다.


지금과 같은 폭넓은 보도에 접하지 못했던 우리들은 - ko승이 아니라는 이유로, 또한 수환을 반쯤 죽이는 경기를 두번이나 봐온 이유로 - 당연히 밴텀급의 최강자는 자모라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자모라는 자라테에게 초장부터 두들겨 맞기 시작해서 무방비 상태로 링 로프에 대롱대롱 매달리기까지  할 정도로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후유증 탓이었을까.

이 경기 후 자모라는 호루헤 루한이라는 무명의 복서에게 이해안되는 무기력한 경기 끝에 기권인지  14 tko인지로 지고 나서 이후 전혀 소식을 못 들었다.

그런 자라테가 체급을 올려 수퍼밴텀급의 윌프레드 고메스에게 도전했다
(
자라테는 밴텀급으로 돈을 벌기에는 키가 너무 컸다).

고메스는 당시 17전 전ko승의 전적으로 염동균 14회에 누이고 챔피언에 오른 십대 강자였다.


아시아에서는 좀처럼 상대의 주먹에 맞지도 않았고, 상대방을 치고 빠지는 영리한 염동균은 뒷 날 이경기에 대해서 “내 평생 그렇게 맞아 보기는 처음이었다”라고 술회했다.

손을 다친 사실을 숨기고 나와 한 손만으로 12회전을 소화한 적도 있는 있을 정도로 현란한 복싱을 하던 염동균이었지만 중남미 강타자들의 예리한 주먹은 피할 수가 없었다.

하여간 중남미 링은 그런 식으로 우리들의 유망한, 누구나 챔피언 감이라던 복서들의 무덤이 되었다.

즉 이들 세계적인 특히 중남미 복서들의 공통점은 실력과 펀치력을 겸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역시 자라테도 고메즈에게 흠씬 얻어 맞고 KO로 패했다.

나는 체급의 벽이 이렇게 두터운 것인가하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자라테를 KO로 이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그를 이길까.


얼마안가 이번에는 고메즈가 체급을 올려서 페더급의 산체스에게 도전했다.

90년대에 차베스가 “신이 빚은 복서”라고 극찬을 받아왔지만 80년대라면 그 칭호는 당연히 산체스의 것이어야 한다.

고메즈도 직사하게 얻어맞고 그후로 권투를 한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이들 중남미의 권투시장은 선수층이 워낙 두터워서 듀란이나 자모라, 혹은 구티 에스파다스처럼 상당기간 챔피언으로 입지를 굳히지 못한 경우에는 대개 단 한번의 패배로 도태되는 것 같다.

하마터면 자모라의 원수를, 자라테의 복수를 해준 산체스가 나의 영웅이 될뻔 했는데…, 이 의학도 출신의 천재 복서는 비행기 사고로 영원한 무패의 챔피언으로 사라지고 만다.



오스카 델라 호야.

그는 90년대의 선수인 탓이지 위의 영웅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스타일의 권투를 끄느름하게 이어오고 있었다.

아마츄어 전적 223(165KO)5패에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중량급 복서로서 그리 감동적일 것없는 프로필임에도 데뷰 당시 100만불의 계약금에 대전료가 15만불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불쌍한 세계챔피언들이 많이 받으면 2만불 정도 받았는데 정말 시장이 틀린 탓도 있겠지만 놀라운 대우였다.


테크닉의 결정판 김태호는 올림픽 금메달은 없었지만 155 153승의 경이적인 전적으로 프로에 뛰어들었고 데뷰전에서 한때 세계 2위였던 아시아의 강자 베니세 보코솔을 반 죽이다시피 했었다.

그가 평생 3만달러 이상의 대전료를 받아봤을라나.


하여간…

호야의 권투는 답답했다.

꼭 옛날 김철호의 타이틀매치처럼 늘어지는 경기에, 턱없이 넓은 스탠스, 가드를 내리고 주위를 도는 당최 긴박감이라곤 없는 재미없는 경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그는 항상 영웅대접을 받았다.

링과 세계 순위를 좌지우지하는 프로모터들 때문이라 여겨지는데, 그들이 말하는 이상한 상품성 때문에 그의 성가는 끝없이 올라가고…,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한 10년전부터 호야는 경기 외적인 요소로 승리를 거둔다는 생각이었다.


아주 옛날 일이지만…, 5체급 석권에 도전한다 어쩌고 하면서 이미 호야의 영웅만들기가 시작된 후 알렉시스 아르게요와의 경기가 있었다.

비슷했나.

둘다 뭐 연예인이나 다름없는 복서였고, 호야의 경기가 대개 그러하듯이 역시 판정으로 이기고 아르게요는 판정을 승복안하는 분위기고.


아르게요와의 경기는 그렇다치고 퍼넬 휘태커와의 경기는 호야가 졌다고 해도 누구도 군소리할 수 없는 게임이었다.

그러나 그는 별로 잘 생기지 않은 흑인이었고,

(흑인 중에도 쿤타킨테 스타일이 있고, 마이클 조던 스타일이 있다. 우피골드버그도 있고, 할 베리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더구나 경기에서도 호야의 힘을 빼려고(혹은 자신이 넘쳤거나), 희극적인 운영을 한 점등에서 명백한 승리를 이끌어내지를 못했다.

호야 같은 친구와 미국에서 싸워 이기려면 월등한 경기, 명명백백한 승리를 이끌어내야 한다.



바로 필리핀의 파퀴아오가 최근에 그런 일을 해냈다.

아래는 경기 내용을 알리는, 어딘가에서 캡처한 기사 내용이다.

호야의 몰락이 즐겁다는 뜻이 아니라 프로 권투가 본래의 인기를 되찾기 위해서는 진정한 강자가 이겨야 하고, 그 강자는 자주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호야에게 억울하게 졌던 많은 세계 랭커들이 이 보도를 접하고 18!, 나도 지진 않았어.”하고 씹어 뱉을런지도 모르겠다.

비록 우리 나라는 아니지만 아시아 복서의 한 사람이 프로권투의 발전에 암적인 요소를 제거헸다는  사실이 기쁘고, 또한 그 사람이 어쩌면 듀란이나 레너드같은 위대한 복서가 될 것같고

그래서 우리 나라도 그런 선수 하나 만들어보자고 빨랑 권투가 활성화됐으면 좋겠다.

돌이켜보면 야구나 축구 같은 프로스포츠가 각광을 받기 시작하면서 권투가 몰락한 것이 아닌지.



한마디만 더.

개나 소나 몇체급 석권하겠다고 설치지들 않았으면 좋겠다.

아시아인이건, 멕시코계 미국인인건 말이다.

대개 그런 식으로 벨트 여러개 따는 친구들이 동 체급의 강자는 살살 피해다니고, 적당히 타이틀 방어하면서 체급 사이를 유람다닌다.
싱겁고 재미없는 권투하면서...,

물론 그 대표도 호야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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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국민 주먹’ 매니 파퀴아오(30)가 현존하는 최고 복서임을 확인시켰다.
파퀴아오는 7일 오후(이하 한국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웰터급(66.68kg) 논타이틀전에서 6체급 석권에 빛나는 오스카 델라호야(미국ㆍ35)를 일방적으로 두들긴 끝에 8TKO승을 거두는 기염을 토했다.
당초 신장(169)델라호야(179)에 비해 10㎝나 작고 라이트급(61.23kg)에서 5.5kg이나 몸을 불리고 링에 오른 파퀴아오의 열세가 점쳐졌다. 그러나 파퀴아오는 한 수 위의 스피드로 초반부터 주도권을 틀어 잡았고 7회와 8회 샌드백 치듯 소나기 펀치를 퍼부었다. 왼쪽 눈이 감길 정도로 안면이 부어 오른 델라호야는 결국 8회 종료 후 경기를 포기했다.
파퀴아오는 48(36KO) 23패를 기록하며 5개 체급 석권 전망을 밝혔다. 1999년 플라이급에서 세계 정상에 오른 파퀴아오는 지난 9월 세계복싱평의회(WBC) 라이트급 타이틀을 따내며 아시아 최초로 4개 체급에서 세계 정상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반면 396패를 기록하게 된 델라호야는 지난해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전에 이어 파퀴아오를 상대로도 과거와 같은 기량을 선보이지 못해 은퇴 가능성이 높아졌다. 델라호야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뛰고 싶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말하며 현역에서 물러날 뜻을 내비쳤다.
by 孤로운늑대 | 2008/12/22 00:10 | 一瞥…, 운동ㆍ체육 | 트랙백 | 덧글(1)
살인자가 자기 아들은 끔찍히도 아끼는 모양이지?

, 과연 이것을 온정의 시각으로만 보아야 할 것인가.
이 아저씨는 어떤 이유로 얼마나 잔인하게 남을 죽였는지는 몰라도 일단 살인자이고 지금 그 죗값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그 사람이 자기 아들에게 간을 이식해주기 위해 검찰의 은전으로 을 나와 성공리에 수술을 마쳤다고 한다.
그의 손에 죽어간 피해자의 유족들은 앞뒤없이 형 집행정지를 주장하며 설쳐대던 웹 상의 여론을 과연 어떤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었을까.
그에게 법의 이름으로 주어진 징벌에는 혹시 이 모든 것 - 자식에게 간을 이식해주고 싶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는 - 까지 포함되어 있었던 건 아닐까.
내가 너무 냉혹한걸까?
.


by 孤로운늑대 | 2008/12/05 00:59 | 時事雜記 | 트랙백 | 덧글(0)
신윤복이 여자면, 당신 엄마는 남자였을걸...

어느 드라마는 또,
되지도 않게 신윤복을 여성으로 그려내고 그게 또 상당한 인기리에 방영되는 모양이다.
정말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맨 미친놈들이고, 사기꾼, 도둑놈들 투성이의 개 같은 세상이다.
드라마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신윤복을 성전환시키는 것도 가능한 놈들에게는 이런 제안을 해보고 싶다.
당신은 이미 성공한 연출가일테니, 당신네 가정사를 드라마로 꾸며보라고.
엄마를 레즈비언으로 그리고, 그래서 당신은 아버지가 어디서 오입해서 만들어온 자식으로 그려보라고…
성공한 연출가의 가정사를 방영하면 아마 시청률도 높을거야.
니네는 그걸 제일 좋아하잖아.
더구나 니네를 신처럼 떠 받드는 불쌍한 연기자들이 그거 다 볼거잖아..
개 후레자식들같으니라구…
왜, 후손들은 개떼같이 덤비지 않지?
그저 조상이 전파타는 것만 좋아라고 보고 있나?
끝.
by 孤로운늑대 | 2008/12/01 01:05 | 一瞥…, 미학ㆍ예술 | 트랙백 | 덧글(3)
박수근의 아들, 이중섭의 아들...

1,2년 전에 이중섭의 작품들이 위작 논란의 대상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아니 이중섭의 그림이 돈이 되면서부터는 지금까지 항상 그래왔을 것이다.
다만 그때는 그 이야기가 일부 전문가들과 소장자들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적 관심이 되어 있었고
그래서 모 방송사의 추적고발 프로그램이 상당히 공을 들인 다큐멘터리를 방영했었다.
솔직히 이중섭 유작의 희소성과 그 작품들이 지니는 시장성과는 별개로… 나는 그의 작품을
미술사적 가치를 떠나든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든
이해하지 못하지만 어떤 의무감에서 눈을 부릅뜨고 나레이션과 화면을 지켜 봤다.
프로그램은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다만 끝에 가서 “많은 전문가들이 위작일 수도 있다”고 말하는 그림을 들여다보고,
우리 말도 제대로 못하는 이중섭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대번에 “아버지의 숨결이 느껴진다”라고 지껄이는 화면을 내보냈다.
프로그램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이중섭의 작품이 양산되고 있으며
일부 전문가들에 의해 진품이라고 강력한 인증을 받아내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왔다.
오늘은…,
오늘은 박수근의 날이다.
자기 스스로 긴 시간 다락방에 올라 아버지의 그림을 분석 및 연구해왔다는 그의 아들은 단 1초면
감정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문제의 “빨래터”에 대해 진품이라고 말했다.
놀라운 사실은 그가 박수근과 같은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의 입으로, 박수근보다 더 박수근다운 그림을 그려제낄 수 있다고 말한다.
왜 자기만의 예술 세계를 개척해나가지 않고, 아버지의 그림을 그리고 자빠졌을까?
더 손재주의 정련이 필요했을까.
매우 예의바르고, 세련된 분위기의 그 아들은 여러가지 드러난 이해 안되는 정황에 대해서는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심지어는 유작관리를 위해 자신이 제작한 슬라이드집에 대해서조차 취재자가 4점이 의아하다고 하자
기댜렸다는 듯, 자기도 너댓개가 불확실하다고 아주 쉽게 말해 버렸다.
불확실한 기초 자료는 왜 새빠지게 만들었지?
지난 번 이중섭의 아들이나 오늘 박수근의 아들이나
문외한인 나의 지각으로도
둘 다 회화나 감정에 있어서 어떤 경지를 넘어선 사람들로 보인다.
둘다 이미 인정받는 전문가들이고, 뭘하든 먹고 살만한 사람들로 보이고…,
옷 입은 스타일이나 조심스런 말투, 안경쓴 모양까지도 비슷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죽은 아버지의 명성을 팔아 돼먹지 못한 모필로 떼돈을 벌어보려는 사악한 의도를 지닌 것이 아닌가하는 불온함조차…, 둘이 정말 내려놨다는 느낌이 든다.
? 아버지의 숨결?
제엔장…
< 진짠지 가짠지 알 수도 없는 화가의 자식들의 그림은 굳이 올일 필요없겠지...를 리지 않는다. >
by 孤로운늑대 | 2008/12/01 00:18 | 一瞥…, 미학ㆍ예술 | 트랙백 | 덧글(1)
블로그질은 아무나 해나?

프로젝트는 점점 악성으로 가는 것 같고…
업계에 소문은 파다해서 앵벌이조차 뽑기 힘들고…
몸과 마음이 다같이 피곤하다.
블로그질은 아무나 하나.
제엔장~
by 孤로운늑대 | 2008/11/05 02:19 | 身邊雜記 | 트랙백 | 덧글(4)
아이가 원하는 것...

아이는 늘 숙제에 시달린다.
본인이 빨리빨리 안하는 탓도 있겠지만…, 일단 내가 보기엔 과업이 너무 많다.
직장을 다니는 애 엄마는 그걸 챙겨주고 관리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화도 나고 제대로 시간 관리를 하지 못하는 아이에게도 불만이 많다.
그러나 초등 5학년인 아이가 외할머니의 관리하에서 효율적인 시간관리가 되겠는가.
사십이 넘은 나도 대학원 다닐 때 강의보다 휴강을 더 좋아했는데…
작년 여름방학 끝나고 얼마 안가서,그날도 아이는 열두시가 넘어서까지 숙제를 하고…,
처는 퇴근하고 아이의 과제를 돌보다 아이의 너무나 나태한 하루 일과에 화가 나서 자러 들어갔다.
거의 한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아이는 내가 컴퓨터를 만지고 있는 안방에 와서 한 귀퉁이 화장대 위에 뭔가를 올려놓고 골돌하게
써내려가고 있었다.
뭘 하냐는 말에 회장 선거 소견문을 쓴단다.
아이는 일학기 때 부회장이었다.
그래서 어린이 회의를 할 때 자기가 판서(칠판글씨)를 하는데 자기는 그게 아니라 회의를 진행하고
싶다고 했다.
문득 콧등이 찡해졌다.
숙제에 허덕이다가 이 늦은 시간에 졸리기도 할텐테, 그래도 선거에 출마해보고자 소견문을 쓰다니….
어렸을 때 아이의 나약하고 숫기없음을 늘 걱정하던 나였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사회생활을 잘
해나가는 편이다.
조금 후 아이가 자러 들어가고 소견문을 읽어 보았을 때, 그래서 종이에 또박또박 적힌 삐뚤빼뚤한
글씨를 보았을 때 나는 아이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불행히 담임선생은 1학기 임원은 출마하지 말라고 해서 아이는 써간 소견문을 같은 아이들 앞에서 읽어
볼 기회 조차 없었.
그리고 금년에는 원하던 회장이 될 수 있었다.
아이는 이제 분명히 자신이 원하는 것이 따로 있고, 그건 어떨 때는 나나 애엄마가 원하는 것과 다를 때
도 있다.
그러나, 아이가 원하는 걸 항상 이런 식으로라도 이루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가 계속 착하고 밝게 자라서 언젠가는 예쁜 처녀가 되기를 기대한다. 끝.
추석 - 성묘갔다 오는 길...

작년 겨울 영어캠프.
나는 저 사진을 보면 웹 상에 흔히 "엽기사진"이라고 돌아다니는(담벼락에 두팔을 짚고서서 다리를 벌리고 경찰의 소지품 검사를
받는 용의자의 모습. 바로 옆의 개도 앞다리를 벽에 붙이고 다리를 벌리고 선 사진)이 생각난다.

원어민 선생님 얼굴 똟어질라!

우리 애는 운동 신경은 젬병이지만, 배운 건 기가 막히게 한다.
수영도 자알하고, 농구도 그렇고…, 승단시험때도 보니까 동문 아이들 중에 품세도 제일 나았다.
그러니깐, 몸치는 아니다.

어린이 답게 탄탄한 다리가 너무 이쁘다.
강아지들이 앞다리가 굵어야 더 귀엽듯이 어린이들은 팔, 다리가 굵어야 귀엽다.
강아지가 그러니까 아이들도 그래야 이쁘다는 건~ 나의 실수일까?
애가 이걸보면 좋아할까?

끝.
by 孤로운늑대 | 2008/10/12 15:13 | 우리 애 \"쫑당\" 萬歲! | 트랙백 | 덧글(5)
영화 『아이거빙벽』 제엔장!!

알프스3대 북벽을 말할 때 흔히 아이거(Eiger), 그랑조라스(Grandes Jorasses Mt), 마터호른(Matterhorn)을 꼽는다. 물론 등정이 어려운 산으로는 K2나 칸첸중가 등의 고봉이 있지만 위의 3개 북벽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직벽으로 악명이 높은 곳이다.
어제 밤에 EBS에서 영화 아이거빙벽( The Eiger sanction)을 해줬다.
10여년 전 명절 연휴.
술기운에 내용도 제대로 모르면서 본 적이 있는데 대략의 스토리는 살인지령을 받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가 산에서 누굴 죽일지 모르는 상태에서, 사고로 동반자가 모두 죽자 지령을 내린 쪽에서는 목표 파악이
안돼서 다 죽인 걸로 치하의 메시지를 보내는 거였다.
집안 사정으로 아이를 내가 재워야 했다 직접 보지는 못하고 나중에 보기 위해 녹화를 해뒀다.
나는 과거 서바이벌이나 암벽 같은데 관심이 많았고, 같은 이유로 전문 등반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실베스트 스탤론이 나왔던 클리프행어(cliffhanger,1993)는 풍성한 눈으로 경치는 아주 좋았지만
밥통 같은 역할의 불쌍한 여자 주연 때문에 영화 내내 짜증이 치밀었었다.
그렇게 장대한 화면과 많은 눈을 로키산 근처에도 가보지 않고 찍었다는건 영화 예술의 승리라고 해야
겠지만 …, 도대체 전문산악인인 여자 구조대원을 그렇게 무기력하고 물정모르는 천지로 그려낼 필요가
있었을까.
큰 기대를 가졌던 k2(1991)는 전혀 어떤 느낌도 받지 않고 그저 시간만을 죽일 수 있었다.
쌈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부잣집 아들의 잘난 척을 감상하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버티컬르미트(Vertical Limit, 2000)가 좋았다.
아버지의 희생을 통해 목숨을 건진 남매,
메카를 향해 때맞춰 절을 해대는 회교도 등반가,
비인간적 이성으로나 가능할 등반가들의 영웅적인 희생,
그리고 그 엄청난 눈사태 화면 등 이야기 자체나 화면이 전체적으로 좋았다.
반대편 사면에 착지하기 위해 질주하는 크리스오도넬(Chris O'Donnell)의 목숨 건 도약이나
절벽에 매달려서 멀리 떨어진 크랙을 확보하기 위애 몸을 날리다 손가락이 젖혀진채 비명을
지르는 이자벨라 스코룹코(Izabella Scorupco),
실종된 아내를 찾아 K2의 산록을 헤메는 냉혈한 스캇글렌(Scott Glenn),
내가 지리산 하산 길에 바위에 켜놓은 촛불을 보고 놀랐던 때가 생각나는 눈 속에 서있는 시체의 모습.
그리고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스펜서트레이시와 못된 동생 로버트와그너가 추락한 비행기에서
인도 귀부인을 구하던 아주 옛날 영화.
그 영화도 화면이 참 좋았다.
하여간 배경이 히말라야이든 알프스이든 그런 저런 영상들로…, 등반이 주요 과업인 영화들을 좋아했다.
처는 어제 Tandem 증설을 마치고 아침 9시에 들어와서 잠자고 ,
아이는 학부형 1명과3명의 친구들과 함께 롯데월드를 갔다.
나도 오랜 만에 진정한 일요일을 느끼며 침대에 반쯤 누워 피 칠갑을 하는 하얀 화면을 기대하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시작한지 3~40분 쫌 됐나.
잠깐 베드신도 있고, 아름다운 수영복의 처녀들도 곧잘 나오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인디언 처녀와
숲에서 뭔가 일을 벌일 찰나에 갑자기 화면이 바뀌었다.
어렵쇼.
든금없이 차승원과 그 연기잘하는 배우 유해진인가가 나타났다.
웬 스파이들의 복수극 준비가 갑자기 군수 투표와 마을 앞 도로 포장으로 뒤집어진거다.
이런 염병!!
누가 비디오를 중간에 껐나.
내가 그랬나?
돌아버리겠다..
----------------------------------------- < > --------------------------------------------
미트레버니언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스위스 알프스 정상에서 벌어지는 국제 음모를 다룬 액션 스릴러다. 첩보 스릴러와 산악영화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색다른 재미가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 겸 주연을 맡았다. 영화 전체에 걸쳐 냉소로 가득한데, 주인공 햄록 박사의 대사는 그 자체가 하나의 블랙유머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원작에 짙게 밴 세상을 향한 냉소를 잘 살려냈다. 미술사학 교수인 햄록 박사는 비밀리에 첩보기관에서 살인청부업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많지 않은 교수 월급으로 수많은 미술품을 수집할 수 있었던 이유는 킬러 활동으로 부수입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많으며 자유롭게 연애를 즐긴다.
어느 날 ‘드래건’으로부터 새로운 지령이 떨어진다. 내키지 않았지만 무척 큰 액수를 제시해 거절하지 못한다. 지령 내용은 아이거 빙벽 등반대 중 한 명을 암살하는 것. 이제 그는 오랜 친구 벤의 도움으로 등산 훈련과 체력 단련을 마치고 스위스에서 빙벽 등반팀에 합류한다. 그는 세 명의 등반대원 중 한 명의 스파이를 찾아내 제거하는 임무를 본격적으로 수행한다.



by 孤로운늑대 | 2008/10/12 14:45 | 一瞥…, 영화ㆍ기타 | 트랙백(1) | 덧글(2)
공직에 오른 우리 아이...

요새는 반장, 부반장이 없이 기냥 회장, 부회장만 있다고 한다.
아이가 작년 4학년 1학기 때 부회장이 됐었다.
그런데, 그 시절 아이는 - 역할이 마음에 안든다고 - 회장이 하고 싶다고 그랬었다.
2학기 때도 선거가 있었지만…
불행히도 담임 선생은 1학기 임원들은 선거에 나오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연수를 갔다 오고 며칠 후 학교 개학을 했다.
이번에 다시 아이가 회장 선거를 나간다는 소리를 얼핏 들었다.
거의 새벽에 집에 들어왔더니 식탁 위에 아이의 선거 유세문이 있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몇 글자 고쳐주었다.
낮에 아이 엄마와 MSN으로 교신을 가졌다.

별것 아닌 일이라고 기냥 넘어가려다가 예의상 전화를 걸었다
(안 걸었으면 큰 일날뻔했다. 또 세상일에 아이 일에 관심이 없는 인간으로 매도될 수도 있다.)
아이가 감정이 고양되어 내게 해 준 이야기다.
창피하게 자기 표 한표도 안나오다가 갑자기 몰표가 쏟아지는데 아이들까지 열광하니 아이는 상당히 고무되었던 모양이다.
"개표를 하는데 열네표까지 글쎄 내 표가 하나두 안나왔어.
얼굴빨개지구 막 어쩔 줄 모르겠는데 열네표째부터 내 표만 계속 나오는거야.
그때마다 애들이 막 와와 그러고…, 가슴 속에서부터 막 뜨거워지는거야."
워낙 퇴근이 늦으니 밤에 만나기는 어렵고, 개발괴발 식탁에 편지 한장 남기고 나도 자버렸다.


며칠 후 노는 날, 아빠도 국민학교 때 사천이백명을 대표하는 전교 회장이었다고 말해주었다.
자기가 학급 회장이 된건 그렇게 대견하게 여기면서도
지 아빠가 과거에 전교 회장이었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전혀 대시근하게 여기지도 않는 분위기이다.
이런~. 끝.
by 孤로운늑대 | 2008/09/28 01:14 | 우리 애 "쫑당" 萬歲! | 트랙백 | 덧글(9)
최홍만이 저 짓거리를 하는 이유를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나는 죽어도 모르겠다.
다른 선수들이 아직도 운동을 하고 대회가 열리는 걸 보면 프로씨름이 생계를 연명하기 곤란할 정도의 박봉은 아닌듯싶고.
저 짓거리해서 돈을 얼마나 버는지는 모르지만, 저 따위 준비상태로 격투기 링에 오르는건 팬들에 대한 무성의가 아닌지.
태권도가 왜 올림픽에서 위치가 불안한지 아는가.
김운용이가 수십년동안 개겉은 짓거리들을 저질러왔고(풀려나자마자 또 쪼르르 북경으로 달려가 자크 로게를 만나?),
종주국의 국력은 물론 외교력, 경제력이 x도 보잘 것없고(유도를 보라.),
타국에서까지 벌이는 더러운 밥그릇 싸움(국기원 파견 사범들은 아그레망이라도 받냐?),
한번 앉은 자리는 죽어도 일어나지 않으려는 골수 아집들(축구협회랑 비슷한 수준일거다),
위 구구절절한 이유들 외에 바로 경기 자체에 흥미가 떨어진다는 점 때문이다.
사실 나는 새미슐트의 경기를 처음 봤고
(그렇게 강해보이지 않는 건 상대가 너무 강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옛날에 봤던 어떤 선수가
- 단 한주먹에 거구의 파이터를 잠재우던 사람 - 피터아츠였다는 걸 오늘 알았다.
그런데...
최홍만이처럼 격투기하면 그게 입장권이 팔리겠나.
위의 두 선수는 세계 정상급의 선수들이라는데, 꼭 옛날 신인왕전 출전자들처럼 쉴사이없는 주먹질에 끝없는 접전을 벌였다.
그러니 관중이 몰리는거다.
그럼 돈이 되고.
프로스포츠는 관중이 있어야 단체도 살고 선수도 사는데 최홍만같은 선수들 경기는 실업자도 아니고… 누가 돈내고 들어오질 않을 것 같다.
실력으로는 흥행이 안되고
삼류 애국심이라도 끌어내서 장사할려고, 그래서 한국에서 자꾸만 경기를 벌이나?
최홍만선수, 정말 실망스럽다.
더 큰 망신당하지 말고, 어디 입산수도라도 해서 솜씨 좀 닦아라.
군대를 갔다 오든가 해서 독기도 좀 더 키우고 말야.
나는 당신이 민속씨름계를 떠난다고 해서, 이름을 알게 됐지만...
당신도 팬이 있을텐데, 그 사람들한테 미안하지도 않나.
당신 옛날에 그 제롬 무슨 밴너인가 유명한 선수랑 벌인 시합도 판정에 문제가 있었다더라.
프로선수라면 그래 살면 안된다.
왜 대충 해다가 강호동이처럼 될려구?
한 사람 더?
시청자들이 무슨 죄로? .


by 孤로운늑대 | 2008/09/28 00:17 | 一瞥…, 운동ㆍ체육 | 트랙백 | 덧글(1)
아이의 귀환

아이가 돌아왔다.
그간 보낸 편지나 전화통화를 통해 부쩍 성장한 걸 느꼈지만
정말 기가 막힌 건 돌아온 다음 날, 6:20에 일어나서 공부를 하더라는 점이었다.
11백만원의 값어치인가. ^^
엄마 선물 뭘 사냐고 자꾸 묻길래 엄마한테 물어보라고 했고,
당연히 내 선물은 필요없다고 했다.
하여간, 애 엄마는 아이가 사다 준 천으로 된 하얀 가방을 뻔질나게 들고 다닌다.
나는 - 내가 쓰고 다니는 것 같은 - 검은 색 모자를 사다 줬다.
나이킨데, 빌어먹을 짝퉁이다.
아이가 사다 준 선물을 안쓸 수도 없고, 으흐흑..




by 孤로운늑대 | 2008/09/12 00:22 | 우리 애 \"쫑당\" 萬歲! | 트랙백 | 덧글(4)
딸 가진 아빠의 식탁은 푸른 초원...

(당연한 이야기지만) 애 엄마의 아이 사랑은 각별하다.
자신이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브래지어를 처음 하게되고 며칠 안돼서 한의원을 갔다 오더니 생리를 지연시키는약을 마췄다고
한다.
왜 그래야하냐고 묻자 아무래도 초경이 시작되면 여자 애들의 성장은 거의 멈춰진다는 것이고 약으로
고걸 좀 억제시킬 수가 있단다.
그리고 음식도 고단백, 육식보다는 채식위주로 바꿔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식단이 바뀌었다.
나는 개밥의 도토리다.
누구도 내 입맛은 신경안쓰고, 그러니 나는 소금과 고춧가루가 많이 들은 음식만 찾나 보다.
나는 채식도 잘 하지만, 육식도 하고 물고기를 특히 구운 생선을 아주 좋아한다.
처도 그걸 아는데, 으흐흑. 끝.
‘08. 6. 8 식탁이다. 기냥 쌈싸먹는 채소의 종류가 이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다.
빨랑 밥 먹언 마!!
‘08. 6.15 식탁이다. 맨날 야근하는 소수민족에 대한 배려는, 전혀 안보인다.



새로 사준 휴대전화 케이스를 들고 희희낙낙.
고르라고 했더니, 웬 걸 두개를 떠억 골랐다.
하나는 색깔이 마음에 들고, 하나는 그림이 마음에 든단다.
그걸 어케 거절하나.
결국 두개 다 사줬다.
몽이야.
사랑하거든!!

by 孤로운늑대 | 2008/08/08 01:13 | 身邊雜記 | 트랙백 | 덧글(6)
우째 이런 일이..., 도대체 왜 일촌을 거절한거야?

아이의 영어 연수 까페가 네이버에 개설되었다.
그래 까페가입을 위해 네이버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다.
아이가 내 일촌 신청을 한번 거절했었던 모양이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도 장점이 많은 사람이고 저를 정말 사랑하는데…, 으흐흑
아이에게 따졌더니, 이유는 말 안해주면서 정말 파안대소를 짓는다.
요런 순~. 끝.


by 孤로운늑대 | 2008/08/08 01:02 | 우리 애 \"쫑당\" 萬歲! | 트랙백 | 덧글(6)
5학년 여자 아이가, 한달간 외유는 무리였나.

하루 한 번씩 오는 아이의 전화는 ⅛은 즐거운 UCLA 이야기이고, ⅞은 엄마 아빠 보구 싶어 죽겠어하는 울음 소리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여럿이 행동하는 주간 과업의 진행은 흥미롭고 좋아하는 것 같다.
문제는 숙소에 돌아와서 취침 직전의 한 시간여인 것 같은데 나처럼 많이 돌아다녀 본 사람도 외지에서 저녁 무렵이 되면 기분이 착잡해지는데 아이가 얼마나 외로울까 그 시간에 엄마 아빠가 못 견디게 보고 싶어지는 것 같다.
전화를 받고 나면, 기분도 처지고 망할 영어 때문에 애까지 고생이다란 생각이 든다.
5학년이고, 밖에 나가면 뭐든 씩씩하게 잘 해내는 아이에게 한달간의 외유는 무리였나 보다.
된장찌개도 먹고 싶고, 김치찌개도 먹고 싶단다.
분명히 식단에는 한국음식도 있는데, 이 것들이...
정말 성질이 났던 것은
- 이 프로그램은 다른 외국 연수 프로그램보다 훨씬 고가이다.
캐나다 한달이 7백 정도인데 이 코스는 그 보다 몇백이 더 비싼 가격이다.
그런데도 애 엄마가 주저없이 보낸 것은 주최측인 뇌호흡 교육단체를 신뢰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
휴대전화의 소지를 금지해놓고 네이버에 까페를 개설해놓았는데,
새빠지게 글을 남기는 게시판의 내용이 1주하고도 반이 지나가도록 애들에게 전혀 전달이 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더구나 엄마들이 적는 게시판의 내용은 대부분 애가 전화걸어서 울어요, 애가 무서워해요, 어쩌고 하는 사정사정하는 내용인데 이런 글에 대해서도 전혀 응답이 없었다.
그럴려면 뭐하러 게시판을 만들어 놨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에는 내가 전화를 걸어서 까페장이란 아가씨
- 결혼도 안했단다. 그러니 애를 떼어보낸 부모들 마음을 이해하겠는가 -
에게 "엠병"을 한 번 부렸더니, 조금씩 개선이 되는 모양이다.
대범한 애 엄마는 헤잇기이다.
조금 우울해하면서도 아이의 어려움에 대해 전혀 대시근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아이는 엄마를 잘 만난 걸까.
애들은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게 평소 내 지론이지만, 아이는 계집애이고 외할머니 슬하에서 응석받이로 자랐다.
이제 열여섯밤만 자면 돌아오지만 하루라도 빨리 날이 가기만 기다려진다.
외국으로의 어학연수를 계획하는 수 많은 초등학생의 부모들이 이 글을 읽고, 심사숙고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끝.
새로 산 선글래스,
다른 애들은 모두 얼굴을 가렸는데, 아이만 꼿꼿하다. ^^

푸~
난 저거 다 읽어보려면 며칠 걸리겠다.

유치원 다닐 때도 그랬는데, 아이는 항상 다른 애들에 비해서 사진의 숫자가 부족하다.
나온 사진도 맨 주욱 앉아있는데 콧잔등만 나오거나 아니면 뒤통수 약간 찍히는 그런 거다.
그래서 이런 사진 보면 엄청 반갑다.


by 孤로운늑대 | 2008/08/03 18:01 | 우리 애 \"쫑당\" 萬歲! | 트랙백 | 덧글(3)
집 떠나는 몽실!!

딸 아이가 엄청난 거금을 주고 한달간 어학 연수를 가기로 한 것은 아마 6월의 일이었던 것 같다.
이번에도 나는 그저 통보를 받았을 뿐이다.
못가게 할 걸 뻔히 아는 애 엄마는 이럴때 매우 대범하다.
애 걱정이 아니라, 내가 보고 싶어서 안보내려 한다는 것도 당연히 안다.
하여간 그렇게 우리 애는 지들끼리 UCLA에 한달간 가기로 다 결정이 돼있었던 거다.
아이의 출국 날짜가 다가올수록 마음이 조급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토요일은 거실에 요를 깔고 셋이 같이 잤다.
(사실은 다른 요를 깔아서 요의 두께가 다른 탓에 층이 져서 아무것도 아니었다. 쩝쩝)
일요일은 침대에 앉아서 아이와 처와 묵찌빠를 하는데 아이가 거의 정신지체아 수준의 열광을 하는 걸 보고 마음이 아팠다.
어렸을 때는 같이 플라톤도 하고, 그랬었는데 아이가 3학년 되면서부터 그 망할 과제들 때문에 같이 놀아 본 기억이 없다.
아이는 긴 외유를 앞두고, 자신의 공고해진 입지를 재빨리 파악한다.
아이는 자신이 이쁜 것도 알고, 엄마, 아빠가 자기라면 껌뻑 죽는 것도 안다.
어떨 때 아주 화가 나면 그거, 잊어먹는다.
거실에서 딩굴딩굴

『인천공항』
쥬니어 플라톤에서 준 캐리어는 사실 이제 들고 다니기 남사스럽고, 용적도 부족하여 새로 샀다.
비록 저 가방을 들어올리지는 못하지만 아이는 "자기 꺼"에 대한 인식이 확고하다.



지하1층 식당.
인터넷에는 저기 서쪽 희한하게 저렴하고 맛있는 식당이 있다지만,
길 떠나는 아이와 그런 걸 찾아 헤메고 싶지는 않았다.

같이 있지만, 역시 음식을 기다리는 건 무료한 일이다.
음식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다면 전혀 그런 감이 들지 않았을텐데






아이가 대견한 건 저런 면이다.
한달간 외지에 가있는데 대한 두려움같은 것이 전혀 없는 것 같다.
무대스트레스도 없다.
무용이건, 연주건 입장 직전까지 히히덕거리고 논다.
하긴 아기 때는 더 했었다.




그러나 게이트를 통과하고 나서 검색대 앞의 열린 문 앞에서 아이는 발돋움을 하고 껑충껑충 뛰면서까지 우리를 한번 더 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아이는 아마도 부모가 우울해할까봐, 걱정할까봐 "야리끼리한" 기분을 감추고 쾌활하게 행동한 것 같다.
몇번 더 눈을 맞췄으나, 이내 문이 닫혔고 애 엄마는 결국 유리창 틈 사이로 한번 더 볼까 하여 허리를 구부리고 안쪽을 들여다 보느라 애를 썼지만, 내가 말렸다.
한가지 성질 나는 것은 21:10 출발인데 무슨 이유로 19:40에 애들을 입장시켜버리는 건지.
그 긴 시간을 아이들끼리 어떻게 견디라고…. .
by 孤로운늑대 | 2008/07/27 20:53 | 우리 애 \"쫑당\" 萬歲! | 트랙백 | 덧글(5)
괄호넣기 시험 문제 ⇒ 캐리비안베이에는 미친 년들이 (많)다.

아이가 방학하자마자 한달간 연수를 간다고, 전부터 가족이 어디를 갔다오자고 주장해왔고
이제 시간도 얼마남지 않아 캐리비안베이를 가기로 약속을 했었다.
원래 난 놀이공원같은데 좋아하지도 않고, 사람 많은데 꺼리는지라 내키지 않았지만…, 아이가 하도 바라길래 결국 오늘 같이 갔다왔다.
사실은 작년 이맘때 이런 일이 있었다.
정말 알뜰한 “빠꿈이” 처가 각종 우대 수단과 신용카드로 대폭 할인을 받아 캐리비안베이를 예약하고 갔었지만 예약의 증빙이 되는 “종잇장”을 안가지고 온 것을 매표소 앞에서 알았다.
예약해놓은 것이 환불이 가능한지도 예측이 안되는 가운데 애의 외할머니까지 모시고 간 상황에서 돌아올 수도
없고, 십몇만원의 추가 지출이 생기겠지라 - 잘됐다싶어서 - 세명만 입장을 시키고 나는 차에서 종일 낮잠을
잔 적이 있다.
(단 한마디도 싫은 내색을 드러내지 않은 나의 고매한 인격이 자랑스럽다.
처와 아이는 찍소리도 않하는 내게 많이 미안했던 모양이다.
사실 나는… 그날 날씨는 차에서 낮잠을 즐기기에는 적절하지 않았지만 돈 4~5만원의 절약보다는,
복작거리는 놀이공원을 피하기 위해 그 길을 택했었다.)
처는 평소 공연 같은 것을 예매할 때 내 의사를 물어봐서 빼놓고 표를 끊는 적이 간혹 있다.
그러한 공연이나, 관람이 고가인 경우에는 사실 그 의사 확인은 매우 맥빠지고, 소극적이긴 하지만…. ^^
하여간, 그래서 그런지 요번에는 아이가 반드시 아빠도 같이 가자고 이리 저리 꼬시는지라 아이를 위해 같이
가는 것이 좋겠다 싶어 나도 꾹 참고 따라 나섰었다.
아이와 처랑 같이 물에서 뒹구는 등 적극적으로 놀았고…, 다음에 더 안가기 위해서라도 오늘 가기를 잘 했다
는 생각이다.
역시 휴일에 놀이공원가는 건 바보 짓이야라는 생각과 불편한 점도 많았지만, 전체적으로 괜찮았고 날씨도
흐려서 긴 줄에서 기다리는 것이 덜 힘들었다.
위 괄호넣기 문제와 관련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대번에 연인관계로 보이는 남녀들이 같이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이나,
“뭐 저런 것들이!!!”하는 생각이 들을 정도로 과감한 노출의 아가씨들.
이런 게 보기 싫었고…, 정말 난 "꼰대"다.
그저 조성된 인조의 풀에서 코파카바나나 리우의 해변에 온 것처럼 하고 다니는 아가씨들이 수없이 많다는데 정말 놀랐다.
내가 어제 옛날 입던 수영복을 준비하는 걸 보고 처는 그거 절대 입지말라고, 여긴 놀이공원이지 해수욕장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아가씨들의 수영복 차림은 과감 일변도였고, 하나같이 너무나 발육상태가 좋고, 수영복의 스타일도 대담해서 뭇 남성 입장객(여기에는 물론 나도 포함돼야겠지만)들을 다분히 즐겁게 했다.
일행인 남자 자식들의 심리는 도대체 어떻게 생긴 것일까.
실베스터 스탤론은 아내인 닐슨에게 더 많은 노출을 강요했다던데… 혹시 요즘 남자 쉐키들의 정서는, 지 애인이 비싼 속옷 입으면 그거 남들한테 자랑하고 싶은…, 그런 종류일까.
하나 더.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로 보이는 아가씨 하나는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침까지 길게 늘어뜨려 땅 바닥에 뱉는데, 정말 보기 싫었다.
사람들은 모두 맨 발로 돌아다니고, 그 여자애도 맨발이었다.
옆에는 일행인 기집애 하나와 남자 쉐키들 둘이 있었고, 그 중의 한쉐키는 이 기집애의 상대로 보였다.
더구나 이 기집애는 몇 걸음만 더 가면 커다란 재털이가 있음에도 굳이 그걸 관상수가 담긴 블록 화분의 나무들 사이에 꼬부치는 것이었다.
십초도 지나지 않아 장내를 도는 여자 근무자가 와서 그 기집애가 보는 앞에서 꽁초를 집어 비닐주머니에 담고
있었다.
담배를 화분에 꽂은 기집애와 그걸 집어낸 근무자 아가씨는 거의 또래로 보였다.
그 아가씨의 유니폼 블라우스는 땀에 젖었지만, 예의 그 망할 년보다 오억배는 더 이쁜 모습이었다.
내 소원 중 하나는 아무데나 담배 꽁초 버리는 년놈들의 입에다가 그걸 줏어서 다시 넣어주는 것이다.
꼭 이루어보고 싶은 꿈이다. .
PostScript : 이번에는 영리한 기집애들 이야기 하나.
줄을 서있는데 이십대로 보이는 너댓명의 젊은 친구들이 아가씨들을 앞에 세우고 우루루 줄과 줄 사이로 몰려 들어 내 옆을 지나갔다.
아가씨들은 지들끼리 "야, 우리가 새 줄을 만든다" 어쩌고 낄낄거리면서 줄 앞 쪽으로 거침없이 나아가더니 나도 상당히 앞 쪽에 있어서 결국 줄 맨 앞에까지 가서 개찰하는 도우미 아가씨 앞에서 "확" 끼어들지 말지를 결정하지 못한 듯 엉거주춤하고 있었다.
정상적인 줄은 두세명 씩 무질서하게 서있었고, 그 친구들은 한 줄이었기 때문에 뒤에서 이 장면이 훤히 보이고 있었고, 나는 또 사알살 분개하기 시작했다.
두번째 서있던 여자애가 맨 앞의 여자애에게 끼어들기를 종용하자 그 그 아가씨는 왜 날 시키냐며 뒤로 빠지더니 두번째 서있던 여자애를 개찰구로 확 밀어버렸다.
등을 밀은 아가씨와 그 뒤의 남자애들이 환호했지만 밀린 아가씨는 개찰구 앞에서 뒤의 정상적인 줄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쑥스러웠는지 기겁을 하고 뒤로 빠졌다.
내가 입장할 차례가 돼서 그 아가씨들의 선두와 내가 나란히 섰고 둘이 눈이 마주쳤다.
차분한 어조로 “줄을 서야지, 젊은 사람들이…”라고 말하자, 아가씨는 전혀 대시근하지도 않다는 듯이 줄이 아닌 줄 몰랐다고 했는지, 줄이 있는 건 줄 몰랐다고 했는지 뭔가 같잖은 변명을 주섬거렸다.
내가 맨 앞에 있었으므로 순간적으로 이 들을 내 앞에 세울까를 생각해봤지만, 너무나 짧은 시간에 그건 올바른 결정이 아닐 뿐만 아니라, 뒷 사람들의 동의까지도 필요한 사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선도로에서 빠지기 위해 차들이 줄줄이 늘어 서있을 때, 중간에 끼어들어서 빠져나가는 차들은 정말 얄밉다.
오히려 그런 차들을 너그러운 척하며 끼워 주는 것들이 더 밉다.
내부순환도로 마장을 통해 답십리 소재의 회사로 출근하던 나는 그 상황이 너무나 싫었는데, 어느 날 그 기다리는 시간이 예상외로 짧은데에 깜짝 놀랐다.
착각이 아닌 가 싶어서 며칠을 재어 보고서, 제 아무리 차가 막혀도 IC 출구 끝에서 청계천 길의 평지로 접어들 때까지 15분도 안걸린다는 것을 알았다.
끼어 드는 차가 적은 날은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 상황이랑 다를 바가 무엇이랴.
더구나 내 뒤에 아이와 애 엄마가 있는데, 내가 젊은 아가씨들에게 선심을 쓸 이유는 개“x”만큼도 없는 것이다.
괘씸했지만…, 더 이상 나서지 않고 묵묵히 통과했다.
당연히 나는 티켓을 가지지 않았고- 인솔자는 항상 애 엄마이다- 점잖게 개찰구를 통과하여 몇걸음 더 나가서 뒤를 돌아 보니, 어렵쇼 내 뒤에 예의 아가씨가 서있고 우리 애와 처는 그 뒤에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야마가 홱 돌아서, 입이 더러워징게 고만 중략
☞ 광고 한마디!!!
연놈 떼지어 몰려 다닐 때 일행 중에 나서기 좋아하는 젊은이에게 알립니다.
공명심도 좋고, 동료들을 생각하는 리더쉽도 좋지만
앞장서서 새치기의 물꼬를 트는 것은 결코 멋있는 행동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턱주가리 돌아가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아니, 꼭 올겁니다.
Caribbean refugee : saved boat people.
Caribbean refugee : Collection for 2008 summer.



by 孤로운늑대 | 2008/07/14 00:11 | 가 볼만한 곳, 가지말아야 할 곳... | 트랙백 | 덧글(3)
사라져 가는 알래스카 빙하 <1>

오랜만에 술도 안먹고, 일찍 퇴근해서 신문을 봤다.
터널처럼 생긴 아르헨티나의 빙벽 지붕 부분이 무너져 내려 꼭 양쪽 벽만 덩그라니 남아 서있던 삼풍아파트 꼴이 돼버렸다.
오래 전에 봤던 영화 “Tommorrow”가 생각났다.
세계적인 기상 이변이 지구를 강타한다.
영국 여왕이 탄 헬기는 급작스런 혹한 속에 연료가 얼어서 추락하고 해일이 뉴욕을 집어 삼킨다.
도서관에 대피한 학생들은 소장된 고서를 벽난로에 던져가며 추위를 버틴다.
섬찟한 장면들이 여럿 있었다.
지구는 오염만으로는 모자라 물도 부족하고, 환경을 망친다는 화석연료조차 부족하단다.
우리 아이에게 아름답고 살만한 세상을 넘겨 주고 싶은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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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푸른 빙하(Glacier) 머지않아 사진 속에서나 찾아야 하는 슬픈 운명을 맞고 있다.
알래스카 남부.
알래스카의 에메랄드로 불리는 프린스 윌리엄 사운드(Prince William Sound) 여름이 오면 빙하에서 녹아 흐르는 물줄기가 폭포를 이룬다. 바다와 접한 빙하는 하루에도 번씩 굉음과 함께 붕괴되어 바다로 떨어진다.
알래스카에는 수만년 동안 만년설이 얼어붙어 만들어 놓은 3천여개의 크고 작은 빙하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푸른 빙하의 모습이 언제까지 모습을 간직하며 관광객들을 유혹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백년, 아니 수십년 내에 웅대했던 알래스카 빙하는 사진 속에서나 찾아볼 있는 풍경이 처지에 놓여있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알래스카다.
건조한 날씨로 적설량이 줄어들자 새로 만들어지는 빙하가 줄어드는 반면 녹아내리는 빙하는 해마다 늘어나 중턱에서 겨우 빙하의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는 것들도 많다.
프린스 윌리엄 사운드에서 가장 규모가 컬럼비아 빙하는 1977년에서 1999 사이에 9km 가량 줄었고, 2010년까지는 14km 없어질 것으로 과학자들은 예상하고 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빠른 속도로 알래스카의 빙하는 사라지고 있다.

프린스 윌리엄 사운드(Prince William Sound)의 빙하가 수십미터 높이에서 굉음과 함께 붕괴되어 바다로
떨어져 내리고 있다. 그 굉음은 몇km 떨어져 있어도 천둥소리처럼 들린다


프린스 윌리엄 사운드(Prince William Sound) 빙하 크루즈 여행이 시작되는 앵커리지 남쪽의 위티어(Whittier)항.
위티어는 작은 요트와 대형 유람선까지 정박해 있는 매우 작은 아름다운 항구도시다. 알래스카에서 위티어로
들어가는 길은 자동차와 기차가 번갈아 사용하는 일방통행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북미에서 가장 긴 터널이라고...
위티어에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면 빙하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고 바다사자, 바다수달 등 해양 동물들도 만날 수 있다.






빙하가 녹아 내리며 거대한 폭포를 만들었다.
프린스 윌리엄 사운드(Prince William Sound) 주변에서 볼 수 있는 20여개의 빙하는 본래 바다와 맞닿아 있었으나 대부분 녹아내려 산 중턱에 걸쳐있다.




유빙(流氷, Pack Ice) 위에서 휴식 중인 해달(바다수달 sea otter).
알래스카의 해달은 아름답고 부드러운 모피를 가지고 있어 19세기부터 밀렵꾼들의 표적이 돼 멸종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1989년 프린스 윌리엄 사운드에서 발생한 최악의 유조선 침몰사고로 알래스카 해달은 또 한번 위기를 맞게 된다.
다국적 석유회사인 엑손 소유의 유조선 발데스(Valdez)호가 암초에 부딪혀 좌초된 것.
미국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해 약 3만 7,000톤의 원유가 이 지역을 뒤덮었다.
오염된 해안선만 5300km에 달했다
지난해 태안 반도에서 유조선 사고로 유출된 기름의 3배가 넘는 초유의 해상오염 사고였다.
해달의 낙원이었던 해안이 오염되어 사고 후 희생된 해달의 수는 확인된 것 만 1천여마리가 넘었고 실제로 원유 유출사고로 희생된 해달의 수는 5천마리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알래스카의 빙하가 사라지고 있듯이 알래스카의해달도 점점 그 서식처를 잃어가고 있다.


유람선 위에서 빙하를 관찰하는 관광객들.
유람선은 빙하가 붕괴되어 바다로 떨어지는 모습이 보일 때까지 주변을 선회한다.
그러나 기다리는 시간은 길지 않다.



금방이라도 부서져 내릴 듯 수직으로 균열이 발생한 프린스 윌리엄 사운드의 빙하의 모습.
이 위태로운 빙하의 모습을 언제까지 볼 수 있을 지 아무도 모른다.

by 孤로운늑대 | 2008/07/12 00:11 | 남의 글에...,내 생각 | 트랙백 | 덧글(0)
불쾌한 편지를 받았을 때...

전자우편을 받았다.
모르는 것들이 보내는 전자우편은 전혀 반갑지도 않고,
확인없이 즉시 삭제하기에는 나같이 인생이 안 풀리는 놈에게는 - 부담스럽다.
더구나 내용까지 이렇게 천박할 경우에는 정말 짜증스러울 수 밖에 없다.
나도 틀어지기 시작하는 내 인생을 만회하기 위해 하루바삐 저런 데 가입해서
작게는 인적 넷웍을 확대하고 인격의 질적 향상
이제라도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아서라.
"우리히어로즈"도 요새 가입금 못 내서 입장 곤란한 모양이던데,
나도 가입비랍시고 수억짜리 청구서 날라오면, 골 꼬집는다.
가입비 내고 깜보돼서, 잘 나가는 친구들 도움받아 같이 잘 나가라?
? 사교계 데뷔?
이런 후진국에 과연 사교계라는 공간이 있기는 하나.
서울대 출신들은 저렇게 할 일이 없나.
非서울대 출신은 오늘도 새빠지게, 출근했구만.
, 참!
난 야간이지?
미안해. .








by 孤로운늑대 | 2008/07/06 00:42 | 身邊雜記 | 트랙백 | 덧글(2)